책소개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정원에 길을 묻다」로 등단한 김미월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표제작 「서울 동굴 가이드」 외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타인과의 소통을 대체할 사물화된 의사소통 방식을 찾는, 개인 낙원의 외톨이들(이광호)이 있다. 이들 외톨이들이 살면서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각자의 상처는 모두 유년시절의 가족(혹은 가족이나 진배없는 관계에 있는 이)들로부터 받은 것들이다.
인물 내면에 자리한 유년 시절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삶에 지배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치유 불가능해 보이는 심각한 상처를 하나씩 걸머지고 있는 이들 외톨이들은,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독특한 낙천성 또한 갖추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공간(동굴, 고시원, 골방, 공중 정원, 반지하 원룸 등)을 가꾸고 그곳을 터전 삼아 생활해 나간다. 그들이 가꾼 공간들은 그들에게 최소 규모의 낙원인 셈이며 그들의 트라우마를 감춰주고 보듬어주고 잊게 해주는 공간이 된다.
목차
너클
유통기한
서울 동굴 가이드
(주)해피데이
수리수리 마하수리
소풍
가을 팬터마임
골방
정원에 길을 묻다
해설 - 최소 낙원의 고독과 은폐 기억의 서사 / 이광호
작가의 말
저자
김미월
출판사리뷰
서울에, 동굴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무거운 이야기를 안 무겁게─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를 행복하게─
세상에 없는 그것이 사실은 있다고 한다!
1977년생 작가 김미월의 첫 소설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김미월은 강릉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강원도내기이다. 고려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서 소설쓰기를 배웠다.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정원에 길을 묻다」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여남은 편의 단편들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받는 신예로 자리 잡은 김미월은 등단 삼 년 만에 첫 소설집을 냈다. 이번 소설집에는 그간 발표한 작품 중 아홉 편의 단편들을 수록하였다.
평론가 박혜경은 김미월의 소설을 두고 재기발랄한 문장과 진지한 주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흥미로운 소재를 훌륭히 소화해낸다고 평했으며 평론가 우찬제는 가볍게 무거운 짐을 걸머지는 아이러니의 지혜를 갖춘 서사를 보여준다, 평론가 이광호는 김미월이 보여주는 고독은 태도가 아닌 생의 현실이며, 그 자체로 너무나 투명하다고 평한 바 있다.
신인 작가 김미월의 이번 첫 소설집이 국내 문단에 싱싱한 활기와 강력한 파장을 던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김미월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낙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진지한 고독으로 완벽히 덮여 있는 외톨이들의 삶뿐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그 세계에 다가가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작가의 방식은 부정을 넘어 긍정으로 향한다.
김미월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공통점 중의 하나는 이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모두 "개인 낙원의 외톨이들"(이광호)이라는 점이다. 이들 외톨이들이 살면서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각자의 상처는 모두 유년시절의 가족(혹은 가족이나 진배없는 관계에 있는 이들)로부터 받은 것들이다. 집을 나간 미혼모의 딸로서 반신불수 외할머니와 살아가는 「너클」의 주인공, 어머니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이유로 절대로 자식에게 만족하지 않은 채 죽어버린 어머니를 둔 아들(「유통기한」),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를 동시에 여의고 갑작스레 아버지에게 다른 자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동생이 강간을 당할 위험에서 모른 채 지나쳐버린 기억을 갖고 있는 종구(「(주)해피데이」), 가족이나 다름없이 친하게 지내던 단짝친구를 질투하며 비뚤어진 생활로 일관하다가 친구가 죽음으로써 혼자 남겨지고 마는 강(「수리수리 마하수리」), 유년시절 자애롭기 짝이 없던 아버지가 자신의 의붓 여동생을 성추행했을지도 모를 의혹을 안고 아버지를 떠나 홀로 살아가는 주인공(「가을 팬터마임」), 역시 유년시절 옆집 아저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그의 자식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오다가 그 옆집 아저씨가 자신의 새아버지로서 가족의 일원이 되어버린 인생(「골방」) 등 김미월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족과 성이라는 것에서부터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힘겨운 삶을 감내하고 있다. 이어, 그들 유년 시절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삶에 지배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각자의 지나온 삶에서 입은 치유 불가능해 보이는 심각한 상처를 하나씩 걸머지고 있는 이들 외톨이들은,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독특한 낙천성 또한 갖추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공간(동굴, 고시원, 골방, 공중 정원, 반지하 원룸 등)을 가꾸고 그곳을 터전 삼아 생활해 나간다. 그들이 가꾼 공간들은 그들에게 최소 규모의 낙원인 셈이며 그들의 트라우마를 감춰주고 보듬어주고 잊게 해주는 공간이 된다. 김미월은 다양한 종류의 낙원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다채로운 불우함을 가진 인간군상들이 기숙하는 삼류 고시원의 삶에 대한 묘사(「서울 동굴 가이드」), 피시방에서 원조교제를 하는 커플이며 할 일없이 시간만 보내는 인터넷게임 중독자들과 손님들의 물건을 삥땅치는 알바생 등의 삶에 대한 묘사(「너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의 한적하고 작은 산사에서 살아가는 세 절식구의 고즈넉한 삶에 대한 묘사(「수리수리 마하수리」) 등을 접하며 독자들은 이제껏 우리가 쉽게 겪어보기 힘든 우리 이웃들의 삶의 질감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재미와 감동을 넘어서 정보까지 주었던 근대적 의미의 소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2000년대 후반 이후의 젊은 소설은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을까? 김미월의 사례는 현대 소설이 어떻게 현대적인 것들을 매개로 현대를 관통해서 나아가는가를 매력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현대 소설의 낯익은 모티프와 주제들을 담담하고 역설적인 방식으로 재구축한다. 가족과 개인의 기억에 대한 익숙한 질문법들을 무대 위에 다시 올려놓고는 짐짓 천진스러운 화법으로 그 질문들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그것들을 무대에서 끌어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 무대 자체의 균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_이광호, 해설·「최소 낙원의 고독과 은폐 기억의 서사」 중에서
1970년대 후반, 혹은 1980년대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한유주, 김애란은 이미 책을 출간한 상태이고 윤이형도 올해 안에 책을 낼 계획이다. 더불어 김유진, 김사과 등도 포함하여 우리 문단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할 이 작가군에, 평단과 독자들은 크나큰 바람을 갖고 있다. 침체이며 위기라고 하는 한국 문학의 현 상황에 활력을 줄,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기를,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끊임없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미월의 첫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는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 독자들에게 신선한 산소 한 모금과도 같은 상쾌함을 불어넣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