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기말 문학의 정수, 원조 컬트 소설, 데카당의 지침서, 장막에 가려진 소설 등 국내에는 입소문만 무성한 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대표작. 소설을 완성한 후 오로지 "열 사람만을 위해", 그리고 "머저리들에게는 단단히 빗장이 잠겨진 난해한 책을 썼다"라고 위스망스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 『거꾸로』는 무궁무진한 의미망을 가진 난해하고도 특별한 소설이다.
한 귀족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세상에 염증을 느껴 약 일 년간 자신이 꾸민 인공 낙원에서 칩거를 시도하나 결국 실패한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줄거리는 없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데 제쎙트의 몽상과 과거에 대한 회상,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성찰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져 있다.
은둔생활의 종결에 대한 내용인 마지막 16장을 제외한 열다섯 개의 장들은 크게 시각, 후각, 청각 등의 감각을 다룬 부분과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작품에 할애된 부분, 그리고 데 제쎙트의 과거의 기억과 포개지는 내면세계를 묘사한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목차
출간 20년 후에 붙인 서문
일러두기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옮긴이 해설: 세기말 문학의 정수, 위스망수의 『거꾸로』
작가연보
기획의 말
저자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출판사리뷰
“행복한 소수”만을 위한 소설, 데카당의 지침서!
“이보다 까칠할 수는 없다”
세기말의 긴장에서부터 세기초의 이완까지─
질풍과 고요의 두 얼굴을 가진 컬트 소설의 대부, 위스망스의 대표작
독자층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이 소설은 발간 당시부터 프랑스 문학, 특히 소설 분야에서 좀처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희귀한 보석 같은 작품이다. 『거꾸로』는 19세기 프랑스의 문학 시장에 마치 “혜성처럼 떨어져” 이후 문단은 “경악과 분노”로 들끓었으며 여론은 “대혼란”에 빠졌다.
“모든 편견을 떨쳐내고 소설의 한계들을 부수며 그 안에 예술과 과학과 역사를 집어넣고픈 욕망, 한마디로 이 문학 형식을 그 안에 보다 더 진지한 작업을 집어넣기 위한 틀로서만 사용하고픈 욕망”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새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더없이 집요한 집착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어떤 작품보다도 독창적이며 어떤 작품과도 비슷하지 않은, 시쳇말로 무엇보다도 ‘까칠한’ 소설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1848년 2월 5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네덜란드인으로 프랑스에 귀화하여 파리에서 활동하던 삽화가였는데, 위스망스의 생애와 소설가로서의 활동 양상을 볼 때, 그가 아버지의 나라인 네덜란드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이후 곧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기숙사 생활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감 등으로 위스망스는 비관적인 성격과 염세적인 세계관, 그리고 대단히 독특한 감수성을 갖게 된다.
위스망스는 20세에 내무부의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한 후 32년간 공직생활을 계속한다. 소설가로서의 활동과 공직생활을 계속 병행했고 초기에는 에밀 졸라 등의 동시대 자연주의 소설가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비슷한 성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희극배우와의 사이에 있었던 밀애를 다룬 『마르트, 어느 창녀의 이야기Marthe, histoire dune fille』(1876),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서 겪은 실제 경험에 기초한 『배낭을 메고Sac au dos』(1880)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1884년 『거꾸로』를 출간하면서 위스망스만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형성되며 일약 유명 작가로 발돋움한다. 이후, 주로 합리주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상징적이며 초월적인 세계로의 지향이 두드러지던 19세기 말의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자, 무너져라, 사회여! 제발 죽어라, 낡은 세계여!”
데 제쎙트는 문학 작품들에 대한 기존의 모든 평가들을 부정한다. 인류 문학사의 고전 격인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호라티우스, 키케로 등에 대해 무관심을 표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혹독한 폄하를 주저하지 않으며 그동안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작품들에 관심을 집중한다. 문학사의 주류를 형성하는 작품들과 그 작품들에 대한 칭송들로만 가득한 세상이 데 제쎙트에겐 역겨움 자체로 느껴진다.
그 모든 낡은 것들, 낡은 것을 낡은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고루한 식견들 틈에서 데 제쎙트는 환멸을 느끼고 혼자만의 인공낙원을 건설해보려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뒤집어보는 입장을 택하며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지만 결국 이런 모험은 실패로 돌아간다.
“타인은 곧 나의 지옥이다.”
데 제쎙트는 타인의 취향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인 혐오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예술작품들은 물론 아주 사소한 집기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그만의 미학적인 취사선택의 기준을 갖고 있으며 ‘대중’ ‘소시민’ ‘진부함’ 등의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가까이하길 두려워하는 ‘혼자 잘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성향을 단순한 편집증이나 기벽으로만 볼 수는 없다.
모든 고정관념과 기성 질서에 대한 데 제쎙트의 반발은 어떤 체계를 갖고 자연질서 자체를 부정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자연질서와는 정반대되는 새로운 질서에의 실험이 은둔생활의 가장 큰 목표이자 원칙인 것이다.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생활, 관장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생활 등 그의 일탈 행위들은 자연 질서의 교란 작업이며 나아가 사회 전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자체를 변모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강한 정신력을 지닌 개인의 모습을 통해 데카당스 문학의 최고봉에 오른 『거꾸로』 속에서 동시대인들을 매료시키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내고 있는 ‘까칠하기 짝이 없는’ 인물 데 제쎙트를 만나보자.
비록 세상이 나의 기쁨을 혐오하고
그 조야함이 내 참뜻을 모를지라도……
나는 시간을 초월하여 즐겨야 하리
─위대한 로이스부르크
하지만 고백건대 어떤 책을 펼쳐서 케케묵은 유혹과 그에 못지않게 늘 똑같은 간음을 보게 되면 난 서둘러 그 책을 덮는다. 결과가 뻔하게 예고된 연애담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는 전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로 판명된 자료들을 담고 있지 않은 책, 아무런 배울거리도 제공하지 못하는 책은 더 이상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거꾸로』가 출간되었던 때, 다시 말해 1884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자연주의는 고정된 원 위에서 맷돌을 돌려대느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각자가 스스로의 삶이나 타인의 삶에서 선별하여 비축해 놓았던 다량의 관찰 사항들은 고갈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 데 제$트의 충동들을 어찌 이해할 수 있었으랴! 『거꾸로』는 문학의 장터에 마치 혜성처럼 떨어졌고 그 결과는 경악과 분노였다. 여론은 대혼란에 빠졌다.
_「출간 20년 후에 붙인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