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른한 살 그녀들의 달콤쌉싸름한 성장기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리커버 특별판
오은수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이따금 상상해보곤 했다. 한때 퍽 가까웠으나 이제는 연락할 길을 잃은 옛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잘 지내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그녀를 향한 나의 애틋한 기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 (12년 만에 다시 쓴) 작가의 말 중에서
최강희, 지현우, 이선균 주연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원작!
소설 속 주인공은 서른한 살의 직장생활 7년차 여성. 외부 업체 프리젠테이션에 어린 여직원 두 명을 배경 삼아 데려가자는 부장의 질척한 요구쯤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을 지닌 미혼 여성이다. 어느 날 그녀는 헤어진 지 6개월이 된 옛 애인으로부터 청첩장을 받는다. 그의 결혼식 날, 예상했던 분노나 질투, 눈물은커녕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은 나. 어른이 된 건가? 그러나 곧이어 15년지기 친구에게서 진저리나도록 현실적인 날벼락을 맞았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믿었던 친구의 깜짝 결혼 발표!
서른한 살, 사랑이 또 오기는 할까?
도시적 삶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2,30대 젊은 여성들의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 작품. 인생의 터닝포인트 앞에 선 사람들의 풍경을 경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한국문학의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정이현이 까칠하게 까발리는 세상사.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른 척 해왔던 바로 그 이야기.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무릎을 칠만한 이야기가 뜨끔하게, 그리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저자
정이현 (지은이)
출판사리뷰
신세기 연재소설의 새로운 전형(典型)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이래, 등장인물·문체·내용·형식 등 모든 면에서 ‘도발적이다, 발칙하다, 감각적이다, 치밀하다’라는 칭찬과 함께 문단과 독자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작가 정이현이 등단 이후 첫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06)를 펴냈다. 그동안 정이현은, 등단작이자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 수상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표제작으로 삼은 첫번째 작품집으로 그해와 이듬해, ‘가장 좋은 젊은 소설’ ‘가장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등의 각종 순위에서 베스트에 랭크되며 집중조명을 받아왔다. 또 첫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트렁크」가 영상으로 재탄생(2005년 KBS-2TV ‘드라마시티’)되는가 하면, 이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들로 이효석문학상(2004), 현대문학상(2006) 등 문단의 유서 깊은 문학상들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기쁨을 톡톡히 누려왔다. 이후 정이현은, 문단과 충무로, 여의도 각계에서 그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신문 일일 연재소설’(조선일보 2005년 10월~2006년 4월, 총 129회 연재)이라는 파격적이고 모험적인 선택을 보여주었다.
최근 한국 문단의 새로운 활력으로 30대 젊은 작가들의 잇따른 장편소설 발표가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경우가 대개 잡지나 일간지의 장편 공모 혹은 2~4회에 걸친 계간지 분재 형식인 데 반해, 내로라하는 문단의 중견 작가도 그 호흡과 체력 유지 면에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신문 연재소설의 형식을 택한 정이현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띄었다. 그동안 소설, 주요 신문과 잡지의 연재칼럼, 그리고 각종 문화제나 대학교 주최의 작가 초청 모임에서 “문학은 곧 독자와의 소통에서 그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한다”“개인적 삶의 정체성이 곧 문학의 가치로 환원돼야 한다”는 나름의 문학관을 줄곧 강조해왔고, 1994년 ‘나우누리’가 설립되면서부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벼락 같은 충격”을 즐겨 경험해왔다는 정이현이고 보면, 매일매일 독자와의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한 신문 연재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써내고 그린 모든 것이 화제 +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소설 읽는 맛’
2005년 10월에 첫 연재를 시작하여 2006년 4월 말 총 129회로 마감하기까지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연재 초기부터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 도입부를 장식하는 잠언 투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문장, 2 매 회 끊어읽기가 가능한 산뜻한 구성, 3 건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 4 곳곳에 솔직 담백하게 표출된 21세기 도시 남녀의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 5 속도감 있는 전개, 6 적재적소에 포진한 젊은 도시인들의 생활코드(스타벅스, 맥도날드, 베스킨라빈스31, 유명 체인 중국요릿집, 베트남 쌀국수 등)과 이들이 연상시키는 7 시트콤 드라마적 감성, 더불어 이미 확고한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는 8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아씨의 섬세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삽화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정이현의 소설은 기존 소설에선 익히 볼 수 없었던 ‘도시적 삶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그 자장 안에서 얽히고설킨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제 막 직장생활 7년차를 건너온 서른한 살의 ‘오은수’는 오랜 직장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진 도시에 거주하는 미혼 여성들의 일과 연애, 친구와 가족, 그리고 결혼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온몸으로 연기한다. 마치 ‘내방(內房)’에서나 은밀히 나눔 직한 은밀한 욕망과 개성을 감추지 못하는 인물들의 대화가, 200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각종 이모티콘을 장착한 휴대폰 액정화면과 인터넷 메신저 화면 속을 숨가쁘게 그리고 자유롭게 유영한다.
15년 우정을 과시하는 단짝 은수와 유희, 재인의 각기 다른 직업관과 연애관, 결혼관에 독자들 특히 20, 30대 젊은 여성들은 일희일비하며 인터넷 댓글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때로는 전폭적인 지지를, 때로는 가차없는 비난의 글을 쏟아냈다. 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열정과 도전으로 맞서는 다정한 연하남 태오, 개량형 옥수수 낱알처럼 모든 것이 반듯하지만 알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영수, 오랜 시간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에서 이제 이성으로 다가서는 유준 등 독특한 개성의 남성 인물들 역시 주변에서 봄 직한 인물로 거듭나면서 동세대 남성 독자들을 『달콤』의 열독자 대열에 합류시켰다. 여기에 중장년층 남성 독자들의 은근한 호기심까지 이번 소설을 통해 정이현 소설 독자의 폭은 훨씬 더 확대되었다. 지금 바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치면 확인되는, 무려 1,200여 개의 네티즌 개인 블로그와 카페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한국 소설 시장의 새로운 활력소 + 21세기 새로운 여성 화자의 출현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의 출간을 즈음해서 이미 문단 안팎에선, 침체된 한국 문학과 소설 시장의 회복을 점치는 조심스런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두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제외하곤 지금의 한국 소설 시장은 지명도 있는 기존 작가라 할지라도 초판 5천~1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신 최근 몇 년 새에 외국 문학, 특히 일본 소설이 한국 소설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거침없이 변화하는 사회와 독자들의 취향을 생각해보건대, 동세대의 젊고 다양한 감각을 예리하게 간취하여 깔끔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거기에 문학적 호평까지 얻고 있는 정이현의 소설이 대중에게서 멀어진 한국 소설을 본연의 자리로 되돌리고 침체된 한국 소설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편 정이현 소설 속 주인공은 이전 세대 여성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여성 화자의 모습과도 차별성을 보인다. 90년대 여성 소설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거나 부당한 차별에 앓는 여성의 저항과 제도 밖으로의 일탈을 주제화하고, 이를 섬세하고 처절한 내면의 고백이나 혹은 그러한 정조의 언어에 담아내는 데 치중했다면, 정이현의 ‘그녀들’은 그 남성 우위의 사회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폭압 아래 형성된 여성상과 여성성을 수용하는 듯하다가 이내 철저히 이용하는 영악함을 보여준다. 혹자가 말한 “적나라한 여성성”을 보여주되 그 속에 숨어 있는 정치 사회적 역학 관계를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으로 접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자조 섞인 냉소와 자기위무 대신 메마른 현실을 건조한 문체에 담아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서 기인할 것이다.
여러 면에서 기존 소설과 차별지어지는 정이현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이미 연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본 고단샤와의 판권 계약 체결로 문단에 또 다른 이슈로 자리 잡았다. 이번 출간과 더불어 일본어판도 곧 소개될 예정이며, 전자책은 물론, 기타 드라마와 영화 등 2차 저작권의 협의 역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분명 젊은 작가 정이현은 이전 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시대에 대한 부채감에서 자유롭고 소위 민족과 사회라는 정치적 담론과도 거리를 둔 듯 보인다. 대신에 정치와 경제, 사회의 이념 논리 대신 그들 거대 담론에 묻혀 미처 조명받지 못했던 개인, 나와 너의 24시간을 채우고 있는 이미지(패션과 광고), 대화(수다와 기사, 인터넷 메신저, 휴대폰 문자), 관계(가족과 연인,부부) 등에 주파수를 맞춘다. 앞서 말한 ‘속도감 있는 전개’와 ‘가벼운 듯하지만 녹록지 않은 주제의식(생각할 거리)’ ‘간결하지만 머릿속에 꼭꼭 새겨두고픈 꽉 찬 문장’은 이 작가의 가장 든든한 연장이며, 작가 역시 그 연장들을 얄미울 정도로 잘 부린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른 척”해왔던, 누구든 볼 수는 있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개인의 욕망, 그 만화경 같은 세계가 작가 정이현의 이야기장(場)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펼쳐든 순간 우리는 아마도, 삐딱한 시선으로 조금 ‘까칠하게’ 까발려지는 사람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이고 이어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무릎을 내려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나의 도시에 사는, 나의 은수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의 도시에 사는, 당신의 인물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당연하다. 나는 요즘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5년 늦여름부터 2006년 초여름까지 은수와 함께 지냈다.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때 억지로라도 태연을 가장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맨송맨송한 얼굴로 보내기 힘들다. 덕분에 여러 가지를 버틸 수 있었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내 이름이 아니라 오은수의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 『달콤한 나의 도시』 中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