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차별과 불평등이 고착된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존재론적 무력감을 극복하는 정동정치가 필요하다!
한국문학을 동시대 감각으로 분석하며 비평의 장을 다각적으로 확장해온 나병철 교수가 2년 만에 새로운 문학비평서를 선보인다. 저자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한국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감성적 불평등성’이다. 감성적 불평등성이란 빈곤한 타자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강등시키는 차별을 말한다.
‘존재 자체’가 피폐화된 시대에는 문제를 인식해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저자는 오늘날의 선결과제, 즉 인격적 자긍심을 회생시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초유의 정치적 주제로 떠올랐다면서 그러한 새로운 존재론적 정치의 주제를 ‘정동정치’라 정의한다. 정동정치는 피폐한 존재의 회생을 감성과 정동의 문제에 연결시키는 존재론적 정치이다. 저자는 스피노자와 들뢰즈가 발전시키고 마수미가 현대화한 정동정치의 개념을 21세기 불평등성의 문제를 해소하는 해결책으로 재구성한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등 우리 시대의 화제작들은 모두 극단의 불평등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생충』에서 ‘냄새’, 『오징어 게임』에서 연대의 해체, 『버닝』에서 에로스의 상실은 모두 존재론적 정동과 연관이 있다. ‘세계 자체의 원리’로부터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이성적 인식을 중시했다. 반면 저자는 오늘날 감성적 차별과 연대의 해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진리와 정동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쓰러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인격적 존재를 회생시키는 정동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침묵주의보』(정진영), 『레몬』(권여선), 『월드 피플』(이재웅),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등의 현대문학 작품,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용균이를 만났다』 등의 영상 작품을 통해 감성적 불평등성과 침묵하는 권력에 대항하고 존재의 오류와 싸우며 21세기의 도전적인 ‘정동정치의 선언’을 촉구하는 스크린과 소설책의 유령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정동과 정동정치
1. 정동이란 무엇인가
2. 에로스와 혐오 ― 능동과 수동
3. 편재하는 젤리와 정동정치
4. 시각적 차별과 정동의 식민화 ― 미시권력과 정동권력
5. 캐슬 사회에 대한 반격 ― 총체성을 대신하는 내재원인과 대상 a
6. 추방된 타자의 회생과 언택트 윤리 ― 《용균이를 만났다》와 ‘소낙눈 사진’
제2장 평등과 정동정치
1. 평등의 이름 ― 윤리의 정치화
2. 고착성과 유동성 ― 피케티를 넘어선 존재론적 정치
3. 정동의 물결과 정동정치 ― 우영우의 고래
4. 자연과 자유의 조화, 대상 a에 대한 열망으로서의 평등
5. 부재와 존재, 위험천만한 언택트 사랑 ― 시와 ‘동백꽃’과 ‘사랑의 불시착’
6. 평등과 사랑, 반세습의 은유 ― 타자의 회생과 《거짓말의 거짓말》
7. 수동적 정동을 유포하는 자본주의와 정동정치 ― 피케티를 넘어서는 타자의 서사
8. 무증상의 증상과 언택트 문학 ― 제2의 증상에 대응하는 새로운 윤리
제3장 역사의 미로와 여성 타자의 정동
1. 역사의 미로와 추방된 타자
2. 일신상의 진리와 여성 시점 소설 ― 김남천의 소설들
3. 여성 타자의 육체적 절박성 ― 이중주의 대화
4. 사회와 심리의 분열과 윤리적 정동 ― 《낭비》
5. 여성 타자의 대화성과 능동적 정동의 소망 ― 〈경영〉, 〈맥〉
6. 역사의 미로와 여성적 정동의 감염력
제4장 변혁운동의 황금시대와 비천한 타자의 정동
1. 변혁의 시대와 타자의 서사
2. 왜 계급적 자각 대신 능동적 정동인가 ― 《윤리21》을 넘어서
3. 타자와 내재원인 ― 실천의 윤리
4. 타자와 앱젝트, 대상 a
5. 이데올로기 시대의 타자의 서사 ― 조선작의 〈성벽〉, 〈영자의 전성시대〉
6. 선물의 은유와 비천한 타자의 정동 ―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
제5장 변두리의 정동과 지식인의 위치
1. 민중 소설에서 변두리 소설로 ― 떨어짐과 다가섬
2. 변두리 소설과 존재론적 정동정치의 출발 ― 재현 불가능한 서발턴의 재현
3. 가슴의 반복운동을 통한 정동적 감염 ― 양귀자의 〈원미동 시인〉,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4. 떨어진 채 다가서는 더 큰 세계 ― 〈한계령〉
5. 폭력과 돈벌이의 세계에 저항하는 ‘인간의 근본’ ― 김소진의 〈개흘레꾼〉
6. 출고될 수 없는 서발턴의 순수 기억 ― 〈그리운 동방〉, 〈비운의 육손이 형〉
7. 별과 똥의 카니발 ― 〈별을 세는 남자들〉
제6장 감성적 불평등성과 침묵의 권력에 대한 반격
1. 헤게모니에서 정동정치로 ― 타자에게 다가섬의 문제
2. 정동의 영역에서의 최초의 싸움 ― 침묵의 권력과의 전쟁
3. 미시권력의 젤리와의 싸움 ―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4. 침묵을 강요하는 감성적 차별에 대한 반란 ― 정진영의 《침묵주의보》
제7장 존재의 오류와 싸우는 언택트 미학
1. 존재의 오류와 제2의 증상 ― 은유적 대응과 언택트 문학
2. 젤리의 세계에서 금빛 전류를 발생시키는 방법 ― 얼굴을 넘어선 정동
3. 감성적 차별에 저항하는 레몬의 정동 ― 권여선의 《레몬》
4. 존재의 오류를 견디는 아름다운 포옹 ― 한강의 〈작별〉
5. 감성의 오류에 저항하는 새로운 연대 ― 이재웅의 〈안내자〉
제8장 캐슬 사회와 비장소의 반격
1. 변두리에서 비장소로
2. 과잉 네트워크 사회와 비장소의 은유적 반격
3. ‘외진 곳’에서의 은유적 연대의 생성 ― 장은진의 〈외진 곳〉
4. 이질적 타자들의 고통의 공명 ― 이재웅의 〈월드 피플〉
5. 재난 시대의 비장소와 정동적 반격 ― 장은진의 〈빈집을 두드리는 이유〉
6. 가슴을 두드리는 은유적 리얼리즘 ― 김탁환의 〈할〉
7. 비장소의 시대와 비대면의 윤리 ― 제3의 비장소와 ‘길 없는 길’로서의 은유적 윤리
제9장 비장소의 시대에서 정동적 시간의 회생으로
1. 미시권력과 정동권력의 결합 ― 《사이렌》의 경고
2. 비장소의 시대와 좀비의 서사 ― 《지금 우리 학교는》
3. 타자와 재회하는 순수 기억의 드라마 ―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4. 비장소와 비대면을 넘어서 ― 김초엽의 〈관내분실〉
5. 평등을 실천하는 정동정치 ― 문화의 정치화와 내재원인의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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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병철 (지은이)
출판사리뷰
차별과 불평등이 고착된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존재론적 무력감을 극복하는 정동정치가 필요하다!
한국문학을 동시대 감각으로 분석하며 비평의 장을 다각적으로 확장해온 나병철 교수가 2년 만에 새로운 문학비평서를 선보인다. 저자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한국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감성적 불평등성’이다. 감성적 불평등성이란 빈곤한 타자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강등시키는 차별을 말한다.
‘존재 자체’가 피폐화된 시대에는 문제를 인식해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저자는 오늘날의 선결과제, 즉 인격적 자긍심을 회생시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초유의 정치적 주제로 떠올랐다면서 그러한 새로운 존재론적 정치의 주제를 ‘정동정치’라 정의한다. 정동정치는 피폐한 존재의 회생을 감성과 정동의 문제에 연결시키는 존재론적 정치이다. 저자는 스피노자와 들뢰즈가 발전시키고 마수미가 현대화한 정동정치의 개념을 21세기 불평등성의 문제를 해소하는 해결책으로 재구성한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등 우리 시대의 화제작들은 모두 극단의 불평등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생충》에서 ‘냄새’, 《오징어 게임》에서 연대의 해체, 《버닝》에서 에로스의 상실은 모두 존재론적 정동과 연관이 있다. ‘세계 자체의 원리’로부터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이성적 인식을 중시했다. 반면 저자는 오늘날 감성적 차별과 연대의 해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진리와 정동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쓰러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인격적 존재를 회생시키는 정동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침묵주의보》(정진영), 《레몬》(권여선), 《월드 피플》(이재웅),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등의 현대문학 작품,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용균이를 만났다》 등의 영상 작품을 통해 감성적 불평등성과 침묵하는 권력에 대항하고 존재의 오류와 싸우며 21세기의 도전적인 ‘정동정치의 선언’을 촉구하는 스크린과 소설책의 유령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사상도 혁명도 책갈피로 숨어든 시대,
타자의 침묵으로 조용한 거리에는
유토피아를 잃은 예술과 문화의 자화상이
음산한 유령처럼 출몰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시대를 조화된 예술도 아름다운 사회도 잃어버린 반낭만주의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런 시대에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고는 사회적 경고의 대체물일 수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차별과 불평등성이 심화된 시대에는 도처에서 ‘변혁의 유령’이 출몰한다고 말했다. 변혁의 유령이란 실제로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감성적 반란과 경고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21세기에는 현실에서 어떤 유령도 보지 못하는 대신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 2019)이나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8) 같은 대중문화에서 정동적 반란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화적 경고는 불길한 현실을 알리는 대리적 신호이며 감성적 유토피아를 잃은 상처로부터 나타난 강렬한 정신적인 동요다. 저자는 대중문화에서 나타난 무의식의 소요와 정동적 반란을 월러스틴이 말한 위기 대응의 대체물로 주목한다.
우리 시대는 사상도 혁명도 책갈피로 숨어든 시대다. 사상가와 지식인의 은거와 침묵은 타자의 추방과 표리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타자의 추방은 불평등성을 영구화하는 장치로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특이한 제2의 증상이다. 타자의 추방은 비판적 사상을 공허하게 만들고 사회를 서열화시키면서 침묵의 시대를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은 절망인 동시에 또 다른 유령의 반격을 낳는다. 미학과 문학이 감성적 위기의 침묵을 뚫고 경고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대중문화와 문학이 보여주는 오늘날의 유령은 배반당한 유토피아의 귀환을 포기할 수 없다는 소망의 응시다. 정동정치는 타자가 추방되고 연대가 해체된 시대에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존재론적 반격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존재론적 정치가 절망적 거리를 은유적 반격으로 전회시키는 언택트 윤리를 추동력으로 한다고 말한다. 언택트 윤리는 맨얼굴을 상실한 우울의 시대를 넘어서는 타자 윤리(레비나스)의 현대적 재발명이다. 우리는 ‘얼굴 없는 인간’(아감벤)의 세상에서 맨얼굴 대신 은유와 정동정치로 회생한 타자와 다시 만난다.
언택트 문학은 보이지 않는 ‘무증상의 증상’을 보이게 드러내며 거리를 둔 채 정동적 재결합을 시도한다. 벌거벗은 얼굴을 상실한 시대에 심연에 남은 잔여물을 회생시키기 위해 떨어져 거리를 둔 채 손을 잡는 것이 언택트 문학이다. 저자는 2000년대 이후 시간 환상을 그린 작품들이 많아진 것도 언택트 미학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시간 환상은 수동적 정동의 맥락에서 벗어난 사람들끼리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정동(에로스)을 확인하는 장치다. 《파이란》(송해성 감독, 2001)에서 강재가 동영상을 통해 파이란과 포옹하듯이 《시월애》(이현승 감독, 2000)에서 2000년에 있는 은주는 만날 수 없는 1998년의 성현에게 가장 깊은 정동적 교감을 느낀다. 《시그널》(김은희 극본 김원석 연출, 2016)에서 이재한과 박해영의 교신은 선적 시간을 뛰어넘는 목숨을 건 도약을 통해 맥락에서 해방된 윤리가 능동적 정동으로 물결치게 만든다. 선적인 시간을 넘어서서 필사적 도약을 통해 타자와 만나는 진행은 《레몬》(권여선, 2019)에서도 나타난다. 《레몬》은 주인공 다언이 죽은 언니와 멀어지다가 레몬 향기를 통해 불현듯 다시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감성적 불평등 사회’에 사는 우리에겐
기습적으로 마음을 열고 ‘대상 a’를 작동시키는
언택트 윤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 이후 경제, 교육, 의료, 시장에서 언택트 사회의 도래에 대한 담론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비대면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온라인 경제도 원격의료도 아닌 언택트 윤리라고 주장한다. 언택트 윤리의 역설은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에서 더 실감을 얻는다.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란 《기생충》에서처럼 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세계이다. 《기생충》은 경제적 불평등성이 극단화되면 감성적·시각적 불평등성이 발생한다는 우울한 비극적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다가와도 서로 연대감이 잘 생겨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저항이 나타나지 않으며 경제적 불평등성은 영구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에서도 깊은 심연의 에로스의 샘물(대상 a, 자크 라캉)이 말라버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사랑이 ‘소낙눈’처럼 쏟아지는 사회를 그리워하지만 수동적 정동의 젤리(《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가 만연되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한겨레》 신문에 실린 ‘2021년 1월 18일 10시 31분 11초’의 장면이 그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무섭게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한 시민이 추위에 떠는 노숙자에게 입고 있던 점퍼와 장갑, 그리고 지갑 속의 5만 원을 건네주는 장면이다. (…) 《한겨레》에 사진이 실리자 수많은 댓글과 격려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다가가지 못하는 대신 이미지를 통해 마음을 연 것이다. (…) 소낙눈 사진은 언택트 윤리를 작동시켰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언택트 윤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가 타자와 포옹하지 못하는 것은 수동적 젤리에 포위된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라진 시민처럼 떨어진 채 다가서며 ‘기습적으로’ 마음을 열고 대상 a를 작동시키는 공격이 필요하다. (본문 72~74쪽)
저자는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에서는 수동적 정동의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멀어진 채 가까워지는 언택트 전략이 요구된다고 역설한다. 정동정치는 ‘얼굴 없는 인간’의 시대에 멀어진 채 다가서며 다시 물결을 일으킨다. 또 다른 바이러스와 싸우는 포스트 바이러스 시대에는 떨어진 채 다가서며 다시 손잡는 소낙눈 같은 ‘기습적인’ 정동정치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