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최민식(崔敏植, 1928-2013)은 ‘인간’이라는 주제에 몰두해 가난하고 소외된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육이오전쟁 직후인 1957년부터 군부가 등장한 1960년대, 그리고 민주화 투쟁이 가열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실린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비참한 현실에서도 생명력을 지닌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비린내 물씬 나고 투박한 사투리가 뒤엉키는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의 생동감 넘치는 일상은 그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진실한 삶의 한 형태였다. 최민식은 대상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이들이 처한 비극과 부조리뿐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는 강인함과 일종의 희극적 여유로움까지 가감 없이 포착해내고 있다.
‘열화당 사진문고’ 『최민식』은 이러한 사진가 최민식을 그려내는 소설가 조세희(趙世熙)의 작가론과 최민식의 자전적 글을 수록하고 있으며, 62점의 선별된 사진들을 통해 최민식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이로써 발전된 현재의 대한민국 이전의, 이제는 쉽게 망각되고 심지어는 외면당하는 역사를 노골적으로 직시하며 들춘다. 최민식의 삶의 궤적을 집약하는 국문 연보와 영문 연보도 함께 수록했다.
‘열화당 사진문고는’ 2017년부터 새로운 디자인과 제본으로 기존의 단점을 개선하고, 이후 출간되는 개정판과 신간에 이를 적용해 오고 있다. 이번에 출간하는 『최민식』 개정판 역시 새 표지로 단장하고, 일부 작품 교체, 영문 연보 추가, 오류 및 최신정보 등을 보완하여 다시 내놓는다.
목차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조세희
‘인간 가족’과 ‘자갈치’의 노래 / 최민식
사진
작가 국문 연보
작가 영문 연보
저자
최민식 (지은이), 조세희 (글)
출판사리뷰
무엇이 ‘우리’를 호명하게 하는가
사진문고 『최민식』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를 고려하여 사진가 최민식의 의의를 가장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가난을 질병에 가깝게 취급하는 풍조가 점차 만연해 가는 지금, 가난으로부터 진실을 보고자 한 최민식의 의지는 오늘날이기에 더욱 놀라운 의의를 지닌다. 책을 여는 것은 소설가 조세희(趙世熙, 1942-2022)의 작가론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다. 조세희는 최민식의 사진을 볼 때면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과 지금도 겪고 있는 일, 그리고 그것이 크고 깊어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우리의 상처에 대해 말하고 싶어진다”(p.4)고 말한다. 그가 ‘우리’를 말하기 위해 선택하는 표현은 ‘우리 민족’이기도 하다. 더는 대한민국을 단일 민족이라고 보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점차 공론화되고 있기에, 우리 민족이라는 말은 실상 조금 위험한 구석이 있다. 한민족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경계를 세우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세희의 ‘우리’라는 호명은 상처를 공유한 역사를 소환하는 말이다. 우리를 압도한 제국주의의 물결 이후로 이곳의 우리는 내내 함께 고통받고 상처를 짊어져 왔다. 이곳의 역사로부터 가난과 고통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처럼 사진문고 『최민식』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과거의 시선을 복원하고 소환하는 작업을 동반한다. 현재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곁에 과거가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최민식의 사진 작업은 과거에 비해 뚜렷한 물질적 발전을 이룬 우리의 현재에, 끝없이 과거의 아픔을 기입한다. 이 아픔은 최민식에게 삶이자 종교이며, 사진이다.
“사진은 나의 존재를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생활의 어려움과 삶의 질곡으로 인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사진에 대한 집념은 더욱더 강해졌다. 나는 마치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여겼으며, 그리하여 사진에 내 자신을 송두리째 맡겨 버렸다. 그리고 사진은 나를 찾아 주었다. 나에게 사진은 종교이자 삶이며, 삶이 곧 사진이었다.”(p.14)
‘가난’으로 발견되는 역사의 진실
책에 선별된 사진가 최민식의 작품들이 전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겨누려는 염원이다. 언제부턴가 가난은 개인의 어리석음에 따른 결과로서의 징벌 또는 질병에 가깝게 취급되 오고 있다. 사회의 여러 비극들은 끊임없이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풍조를 부추긴다. 그러나 최민식의 사진들에 담긴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의 사진들 속에서 가난은 역사적 상처로 인해 모두에게 덧씌워져 버린 무엇이며, 어느 한 개인의 책임으로서의 가난이 아닌, 개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고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모두의 역사다. 바로 그런 시선을 통해 최민식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듯 보인다. 그의 시선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그가 진실을 찾으려 한 사진가였음은 분명하다.
최민식이 고하려 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는, 소설가 조세희가 최민식을 두고 쓴 다음의 글귀에 기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땅 구성원들이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며 서둘러 민족을 형성해 새 국민국가로 설 때, 우리는 그들과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 우리는 부서지고, 깨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에서 또 고통받는 불쌍한 ‘반쪽’으로 서서 불쌍한 또 다른 반쪽을 정말 눈물 나게도 서로를 불구대천의 적으로 쏘고, 결국은 반신불수에 반쪽은 사람이고 나머지 반쪽은 마귀인 흉측한 괴물로 존재하게 되었다.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지금 세계에 이런 민족은 우리 말고 또 없다. / 나는 이 지점에서 최민식을 만나게 된다.”(pp.4-5)
그의 말대로 세계에 분단 상태로 남겨진 이들이 ‘우리 민족’뿐이며 우리 말고는 또 없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바로 그 문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이제 놀랍도록 변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나 그럼에도 조세희가 말한 ‘우리 말고 또 없는’ 상황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조세희가 최민식을 만난 그 지점에서, 여전히 최민식을 만나고야 말 것이다. 사진으로 진실을 말하고자 한 최민식의 의지가 지금까지도 선명히 빛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