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만화로 재탄생한 고전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는 과거와 현재가 끝없이 중첩되고 혼재되는 서술 방식과 난해한 문장들로 인해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연구자들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국내 독자들은 물론 프랑스 독자들도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 포기하는 텍스트라고 한다. 스테판 외에(Stephane Heuet)는 이십여 년 전부터 이 소설을 만화로 각색, 해석, 재구성해 오는 일에 전념하고 있고, 그 작업 속도가 더디지만,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합본 2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는 원작 제2권에 해당하며, 만화본 낱권 7권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 I」(2020), 8권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 II」(2022), 2권 「고장의 이름: 고장 I」(2000), 3권 「고장의 이름: 고장 II」(2002)을 한데 묶은 것이다. 그간 원작의 순서와 상관없이 만화본이 출간되는 바람에 독자들이 느꼈을 혼란이 적지 않았겠으나, 약 20년에 걸쳐 나온 책들이 합본으로 엮이며 뒤엉켰던 출간 순서가 바로잡히게 됐다. 내용적으로는 앞서 나온 『스완네 집 쪽으로』와 더불어 마르셀의 청소년기, 즉 더 넓은 세계로 나서기 전,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형성하고 삶과 예술, 사랑에 관해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는 시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게 됐다. 합본은 낱권보다 판형을 축소해 밀도를 높이고 디자인을 새롭게 하였다. 또 낱권에 없는 ‘어휘풀이’를 새롭게 추가하여 소장본으로서의 매력을 갖추었다. 또한 일부 표기법과 표현을 가다듬고 소설의 내용과 관련된 자료를 부록으로 통합해 정리했으며, 역자의 해설도 다시 손질하여 내용 개정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목차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
고장의 이름: 고장
부록 ― 등장인물 / 마르셀 프루스트 / 어휘풀이 / 역주 / 역자해설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은이), 스테판 외에 (그림), 정재곤 (옮긴이)
출판사리뷰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의 줄거리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는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먼저 제1부에 해당하는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는 마르셀이 다양한 관계의 인물들과 교제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마르셀은 아직 자신의 문학적 취향이나 예술적 시각을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하여 타인, 특히 드 노르푸아나 베르고트의 말이나 생각에 흔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자 발버둥 친다. 또 그는 질베르트와 만나고 헤어지며 사랑에 관한 깊은 통찰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마르셀이 작가로서 자의식을 다지면서도 사랑으로 인한 감정의 굴곡도 거뜬히 견디며 성숙한 예술가로 성장해 나가는 시행착오가 제1부의 핵심 내용일 것이다.
제2부인 「고장의 이름: 고장」에서 마르셀은 질베르트와의 이별을 뒤로하고 발벡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마르셀은 아름다운 ‘활짝 핀 아가씨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특히 질베르트에게 품었던 연정의 감정이 알베르틴으로 향하며 마르셀의 사랑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한편 욕망에 눈이 멀어 갈팡질팡하던 마르셀의 시야를 열어 준 이는 엘스티르다. 엘스티르는 마르셀의 정신적 멘토가 되어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예술품에 담긴 서사의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나 혈기 왕성한 마르셀에게는 이러한 가르침이 불러온 지적이고 예술적인 감흥도 ‘활짝 핀 아가씨들’이 내뿜는 매력보다 강할 수 없었던 듯싶다. 결론적으로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는 마르셀의 삶의 거대한 두 축인 ‘사랑’과 ‘예술’의 면면을 보여준다. 곧 소설은 그 자체로 마르셀이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깨달으면서도 ‘예술’을 대하는 관점을 확립하는 성장기로 보일 뿐만 아니라 프루스트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그려낸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가가 한 땀씩 수놓은 이미지
본문에서 노란색 바탕의 지문 부분은 프루스트 소설의 원문을 인용한 것이며, 주로 인물들의 대화를 담은 풍선 부분은 만화가 스테판 외에가 각색하거나 창작한 것이다. 원작 소설을 발췌할 경우에는 반드시 원문 그대로를 온전히 인용했고 소설이 문장 단위에서 인위적으로 축약되거나 훼손된 부분은 전혀 없다. 이런 만화가의 노력으로 비록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원문을 맛보면서 만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합본 2권은 만화가가 그림 작업뿐만 아니라 채색까지 직접 담당하여 텍스트의 요소들이 이미지로 멋지게 되살아났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물론 세세한 표정, 그리고 제2부의 주무대인 발벡의 아름다운 해변이 생동감있게 드러나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그간 이 작품의 난해하고 복잡한 문체 때문에 독자들이 외면하거나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만화가의 각별한 노력 덕택에 이미지에 익숙한 현대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한층 편안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만화가의 이러한 노고를 인정해 준 것일까. 그는 합본 2권의 마지막 부분인 낱권 8권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 II」의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프랑스 한림원에서 수여하는 에르베 들뤼앙상(Grand Prix Herve Deluen)을 받게 된다. 프루스트 역시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로 1919년 공쿠르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만화가에게도 남다른 감회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만화본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한 큰 원동력이 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