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만화로 읽는 문학의 고전
고전(古典)이란 많은 독자들이 오랫동안 읽고 또 늘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명성에 비해 극히 적은 독자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난해한 문장들, 과거와 현재가 끝없이 중첩되고 혼재되어 있는 이 소설은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연구자들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국내 독자들은 물론 프랑스 독자들도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 포기하곤 하는 텍스트라고 한다. 숱한 국내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려 애를 쓰지만 중도에 그만둔 ‘우울한 경험’을 안타까워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 대작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 시도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만화’를 통해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부활시킨 일이다. 그 주인공은 광고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프루스트의 작품세계에 매료되어 만화가의 길로 뛰어든 영상 전문가 스테판 외에다. 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작품 전체를 열네 번이나 정독했고, 이야기체 감각을 보여줄 문장들을 점차적으로 골라냈다. 또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프루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파리 외곽의 일리에(콩브르) 지역의 풍경과 건축물을 스케치했으며, 그 시대의 의상을 연구하고, 프루스트의 특이한 삶을 보여주는 여러 곳을 방문하는 등 이 년간 이 작업을 위해 준비했다”(『선데이 타임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들어졌는데, 만화가 스테판 외에는 일 년에 한 권씩 십이 년에 걸친 작업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 책은 그 첫 권이다. 1999년 처음 한국어판 출간 후 22년이 지나 나온 이번 개정판에서는, 일부 표기법과 표현, 오역을 바로잡고 역자의 해설도 다시 손질했으며, 표지와 본문 조판도 깔끔하게 손질했다.
목차
역자해설 -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역주
콩브레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
출판사리뷰
시간을 거스르는 긴 여행의 시작
이 책은 원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3부 중 제1부, 즉 「콩브레」에 해당한다. 이 부분은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질 소설 전체에 대한 도입부이자 소설의 주요골격이 제시되는 곳이다. 첫 권의 제목 ‘콩브레’는 어느 시골 마을의 이름이다. 콩브레는 소설의 주인공인 마르셀이 어린 시절 부활절 방학 때면 식구들과 함께 가서 지내곤 하던 레오니 이모네가 있는 시골 마을이다. 또한 「콩브레」는 중년의 나이에 이른 이 소설의 화자가 자신이 보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들려 주는 이야기이자, 가장 오래 된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콩브레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작을 이루는 부분이다. 이처럼 소설은 시작하면서부터 지나간 과거를 향해 있는데, 이 과거, 그것도 까마득한 오래 전의 과거를 주인공-화자가 어떤 계기로 이야기하게 되는지는 가히 신비에 속한다. 그리고 이 신비는 이 책의 서두에서 소개되는 유명한 ‘마들렌 과자(les Petites Madeleines)’의 일화가 제공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외출에서 돌아온 마르셀은 어머니가 내놓은 뜨거운 홍차를 마들렌 과자에 적셔서 마신다. 그러자 그 순간 그는 까닭없이 커다란 희열감에 휩싸이며, 그의 내부에서 뭔가가 꿈틀대며 일깨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윽고 그는 조금 전 홍차에 적셔서 마셨던 마들렌느 과자가 아주 오래 전 자기가 콩브레에서 맛봤던 바로 그 맛임을 기억해내자, 그때의 모든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재의 시간 속으로 홍수처럼 밀려드는 기적을 경험한다. 이를 통해 마르셀은 죽은 듯이 보였던 과거가 자기 안에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이처럼 현재의 시간 속으로 범람해 오는 과거의 시간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위해 이제 바야흐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영상 이미지의 힘
스테판 외에의 이 만화책은 원작의 ‘축약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만화책이 원작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거나 변경하는 방식이 아니라, 원작을 선택적으로 취하되, 그때는 소설 문장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작의 텍스트로부터 어느 부분을 선택하고 또 어느 부분을 버릴 것인가는 전적으로 만화가 자신의 제2의 창작행위이며, 또 이 행위는 그 자체로 프루스트 작품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만화가는 7권으로 된 원작을 만화에 담을 계획을 세우면서 원작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재구성하는 ‘반란’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또 앞으로 나올 만화들을 통해 프루스트 원작의 맛을 한껏 즐기면서도, 만화가의 원작 ‘해석 솜씨’까지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원전의 문자 텍스트를 영상 이미지에 함께 담아 ‘한눈’에 보여주는 마력을 발휘 만화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현지에서 출간된 지 3주 만에 초판 12000부가 모두 팔려나가 8000권을 다시 찍었다고 한다. 이 만화책에 대한 현지 반응은 긍정론·부정론이 뒤섞여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프루스트의 원의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작업된 이 책이 프랑스 독자들에게 유익한 프루스트 문학 체험이 되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며, 이것은 다른 언어권에 속해 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훨씬 실감나는 프루스트 체험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루스트의 문학세계를 세밀하고도 애정이 깃든 그림들로 복원해낸 이 만화가의 화필에 매혹되지 않을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프루스트의 작품을 문자 텍스트로만 접해 왔던 독자들은 이 만화본의 어떤 대목에서는 원작을 통해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엄청난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단선적(單線的) 서술의 전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문학 독서행위와는 달리, 몽타주를 서술의 기본단위로 삼는 만화는 원전의 문자 텍스트를 영상 이미지에 함께 담아 ‘한눈에’ 보여주는 마력을 발휘한다. 이는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하지만 스테판 외에는 자신의 만화책이 프루스트의 원작을 읽는 독서행위를 결코 대신할 수 없으며, 자신의 책을 길잡이삼아 직접 원작을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프루스트를 천재라고 부르면서 그의 모든 말을 중요시하죠. 하지만 실상 그 모든 것은 어지럽게 뒤섞여 있을 뿐입니다. 프루스트의 원작 대신 제 만화를 읽어 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 만화책이 프루스트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통로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 만화를 읽음으로써 프루스트의 작품을 계속 읽게 되길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단순히 바라는 마음 이상으로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자 정재곤은 프루스트 전공자로서, 난해하지만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프루스트의 문장을 얼마나 원형에 가깝게, 그러면서도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의미와 느낌을 전할 수 있는가를 고심하면서 시리즈 번역에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다. 또 고등학생 정도의 독자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적절한 역주를 충분히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