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라스코, 쇼베, 알타미라….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보았을 이 동굴들에는 수만 년 전에 그려졌다고는 믿기 힘든 대단한 장관의 벽화들이 남아 있다. 떼 지어 달리는 황소나 사자에서부터 일부러 찍어 놓은 사람의 손자국,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별할 수 없는 복합적인 형상까지. 선사인들이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행한 결과물들을 보고 있자면, ‘왜 찾아가기도 힘든 장소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선사학자 장 클로트(Jean Clottes)의 『선사 예술 이야기(Pourquoi l’art prehistorique?)』는 이같이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샤머니즘에서 그 탄생 원리를 찾아간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선사시대의 예술이 미술사의 첫번째 장 정도로만 간략히 다루어졌고, 별도의 심도있는 연구서가 생각보다 적었다.
이 책은 이론적 설명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모사화부터 동굴 벽화 및 집기 예술, 샤먼 의식을 촬영한 사진 등 도판 30점이 답사 경험들과 함께 총체적으로 수록되어, 입문서로도 학술서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줄 중요한 저술이다.
목차
시작하며
1.동굴 예술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경험론의 함정과 야망의 부재
구석기 예술의 잠정적 의미
수단과 시선의 선택
어떤 의미를 위해 어떤 가설을 세울까
인종, 예술, 정신성
예술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을까
민족학적 비교의 공헌과 위험
2.여러 대륙에서 다양한 동굴을 만나다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시아
3.세계의 지각과 예술의 기능
자연을 대하는 태도
장소를 대하는 태도
동굴을 대하는 태도
내벽과 스펠레오뎀에 대한 태도
-내벽의 선택
-자연적 요철의 중요성과 그 해석
-벽면 접촉과 벽면이 은닉하고 있는 것
--손들
--윤곽선 및 손가락 선묘, 손대기 흔적
--심겨 있는 뼈와 안치물
--동굴에서 나온 것을 활용하기
동물에 대한 태도
구석기 신화
-쇼베의 비너스
-라스코의 우물
-새-새끼사슴
누가 이 예술을 했을까
개념적 틀과 샤머니즘
끝맺으며
주(註)
감사의 말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장 클로트
출판사리뷰
선사 예술의 ‘의미’를 찾아서
태고의 것을 향해 던지는 이 질문이 어색하고, 의미를 알아내려는 시도가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선사학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그렸는가에 주목해 왔기 때문이다. 저자 장 클로트도 한때는 대부분의 동료들처럼 회의론에 빠져 있었다. 현재와 너무 멀리 떨어진 시대이므로, 동굴에 들어간 이유와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탐색한다는 건 어차피 실패로 돌아갈 연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거의 전부가 매달렸던 ‘언제’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연구는, “그들은 자신들의 신화를 표현했고, 그것을 영원히 남기고자 했다” 따위의 짧은 설명으로 진실의 일부만 드러낼 뿐이었다. 장 클로트는 그 모순과 난제 들을 비판하며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를 심화해 나갔다. 그는 동굴과 은신처(abri) 발굴을 바탕으로 고고학 연구를 계속해 온 덕분에, 여러 대륙을 여행하며 다양한 암면미술 유적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서문 「시작하며」에서 이를 통해 관심을 종교나 세계관으로 넓혀 간 배경에서부터 샤머니즘이라는 틀 안에서 동굴 예술을 주목하기까지의 과정들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여, 우리가 ‘왜’라는 기초적인 물음에서 한 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선사시대 연구가 지금까지 어떻게 이루어져 왔고, 다른 학문에서 취한 입장과 선사학 고유의 연구방법론은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 본다. 2장은 유럽 이외의 다른 대륙, 즉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시아(인도, 중국 등)의 유적들을 찾아가며 다양한 후손 민족들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들을 다룬다. 이 책의 중심이 되는 3장에서는 문화에 따라 변주되어 나타나는 예술 사례들이 유럽의 동굴과 장소, 자연, 동물, 신화와 같은 구체적 요소를 중심으로 소개된다. 여기에는 저자가 앞서 제기한 문제들이 적용되는데, ‘왜’ ‘누가’ 그렸을까, 왜 동굴 바깥이 아닌 ‘안’에 그렸을까, 왜 사람이 아닌 동물의 형상이 대부분일까 하는 질문들이 그것이다.
1장 「동굴 예술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는 동굴 예술에 접근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관점과 그 개념들을 다루는데, 이를 위해 먼저 예술을 메시지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전제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을 통해 경고나 금기를 내리거나, 숭고한 사실 혹은 신화를 영원히 새기며, 존재를 표명하고 확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써 예술은 신이나 정령 또는 정령의 힘을 얻고자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끈이 되어 주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신이나 정령이 바위나 동굴 ‘내벽’ 너머에 살고 있다고 여겼으리라 짐작되는데, 생생한 현실 세계와 초자연적 세계 사이에 이 동굴 내벽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에 관한 연구는 예술을 탄생시킨 자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점, 즉 경험적 지식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비관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다. 이에 반해 경험론자들은 객관성을 주장하며 모든 가설로부터 자유롭다고 확신했는데, 여기서 요구되는 객관성 역시 결국 동시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수용하고 이론처럼 구현하는 가설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결국 연구는 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구석기시대 예술의 발견 이후,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한 것이라거나, 동물 숭배와 관련있는 토테미즘의 양상이었다거나, 일종의 주술적 행위였다거나 하는 가설들이 이를 설명해 보려 했다. 그러나 너무 포괄적이거나 모순되어 구체적인 사례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클로트는 지금까지의 연구와 가설 들이 이룬 성과와 한계를 차근히 분석하는데, 특히 서로 상반되는 동료 연구자들의 사례와 그들의 말을 풍부하게 인용함으로써 독자들이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고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도록 했다.
종교적 틀 안에서의 예술
한편 1960년대부터 시도된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전통 부족들은 환원할 수 없는 독창성을 가진다. 따라서 이 시각에서는 그들 간의 비교를 모두 거부하고 동굴 자체에 집중해 이미지의 구조를 연구한다. 막스 라파엘, 앙드레 르루아 구랑과 같은 선사학자들이 채택한 연구방법론으로, 그들에 따르면 구석기인들은 샤머니즘 유형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예술은 이러한 종교적 틀 안에서 창조되었다. 장 클로트는 사반세기 가까이 이 가설을 연구한 데이비드 루이스 윌리엄스와 『선사의 샤먼들(Les Chamanes de la pr?histoire)』을 함께 출간하면서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수렵 경제와 깊은 연관을 맺는 샤머니즘 사회에서 샤먼은 현실과 영혼 세계의 중재자로, 실존하는 모든 존재를 돕는다. 내세에서 샤먼은 동물 형상의, 즉 현실에서 사냥당했던 영혼을 만나 협상하고, 미래를 예언하거나, 사냥으로 비롯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깨진 조화를 다시 세운다. 이때 샤먼이 경험하는 환영은 동굴 벽면에 표현된 이미지와 관련된다. 최면과 같은 트랜스 상태에서는 몸이 부양하는 느낌이 들거나 눈을 감으면 기하학적 형상들이 보일 텐데, 이미지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클로트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파베르보다는, ‘영적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스피리투알리스라 부르길 바라면서 그 정신성에 주목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이 강렬한 정신 작용으로 내적 세계에 이미지를 투사하고, 이를 다시 외적 세계에 투사한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을 수렵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살해’해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구석기인들에게는 일종의 속죄 의식이 있었을 테고, 종교 의례와도 같은 행위로써 예술이 이루어졌으리라는 짐작이다. 저자는 이같은 여러 가설과 그에 따른 비판과 논쟁 들을 짚어보고, 이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발견과 연구, 경험들이 계속되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에 대한 답이 되어 줄 것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사례들이 2장 「여러 대륙에서 다양한 동굴을 만나다」에서 소개된다.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시아를 답사한 기록들과 전통을 잇고 있는 후손 민족들과의 만남은, 객관성을 주장하는 일보다 훨씬 ‘과학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관련 서적이나 학술 자료를 통해서만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보고, 인상주의적인 방법일지라도 감수성과 개인적 경험을 활용하고자 했다. 아메리카 요쿠트족이 수천 년간 정령들에게 바쳐 온, 암벽 틈새에 담뱃잎을 집어 넣는 의식에 직접 참여하거나(p.65),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거대한 페니스를 달고 뛰어 다니는 심술쟁이 정령 ‘퀸칸’의 그림뿐 아니라 그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전해 듣고(p.87), 투바공화국의 암각화 유적에서 만난 샤먼에게 세계를 파악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배우기도(p.113) 했다.
인간의 보편적 사고를 표현한 세계
현장에서 체득한 생생한 경험과 증언 들은, 몇 만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선사인들이 바로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클로트는 이를 바탕으로 인간 집단이 전념했던 보편적 주제들이 예술로 표현되는 양상을 되짚어 보는데,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 왜 유독 동물의 형상을 그렸을까? 틈이나 요철, 기이한 주름들은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무수히 찍힌 손자국들은 우연일까, 의도된 흔적일까? 나란히, 또는 겹쳐져 그려진 그림들은 서로 연관이 있을까? 과연 여성은 창작의 주체가 아니었을까? 3장 「세계의 지각과 예술의 기능」은 동굴의 암흑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듯 실마리를 풀어 가는 장으로, 구석기시대의 유럽 동굴과 바위 등에 표현된 예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떤 개념적 틀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지 세분화하여 제시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전반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일정한 차원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낯선 예술을 간명하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부질없음은, 누가 봐도 객관적인 방법으로 모사화를 제작했지만, 의미 해석의 90퍼센트가 틀렸던 ‘매킨토시의 경험’(p.127) 사례에서 확인된다. 저자는 서양인으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모든 것을 끝까지 파고들어 확신을 얻으려는 경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서,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감안해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 아래, 쇼베 동굴의 후실이나 라스코 동굴의 우물 등 잘 알려진 벽화들의 해석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쇼베 동굴의 후실에서 발견된 검은 그림(p.181)에는 그 전에 동굴 곰들이 낸 듯한 흠집들과 함께 여러 시대가 뒤섞인 손대기 흔적(trace)이 보인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반복 행위로, 손을 통해 암면과 직접 접촉하고자 하는 명백한 의지를 증명한다. 라스코 우물에 있는 새 머리 모양을 하고 발기한 채 뻗은 남자 벽화(p.206)의 경우, 그간 남자는 사냥하다 죽은 불운한 사냥꾼으로 해석되었으나 우물이 동굴에서 가장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 있고, 탄소가스의 비율이 높다는 장소성과 연결 지어 그림의 단서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모든 지표들은 샤먼 형태의 종교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만여 년의 시간 동안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기본 개념을 갖춘 종교가 있었다는 게 저자의 입장으로, 최근 시대까지 지구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에 샤머니즘 문화가 펴져 있었다는 사실 또한 확고히 한다. 이로써 샤머니즘은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오랜 예술적 전통의 하나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장 클로트는 이 또한 하나의 가설이라는 열린 태도로 결론 짓는다. 후기 「끝맺으며」에서 그는 구석기 예술과 관련해 밝혀진 사실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가설 하나가 이십세기 전반에 제시된 이론들을 무시해도 되는 혁명적 개념은 아니라고 밝힌다. 복잡한 현실을 좀더 넓은 틀에서 보게 하는 의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책 끝에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자료들을 실었다. 참고한 문헌들이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그 양 또한 방대하여, 주석에는 저자명과 연도로 약기하고 자세한 서지사항은 참고문헌에 따로 모았다. 「옮긴이의 말」에는 장 클로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역자의 해설을 담았으며, 찾아보기에 동굴과 그 원어명을 함께 수록하고 개념, 지명 등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