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앞에 되살아나는 그 이름들
이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이 195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후반 사이 각종 잡지에 발표했던 마흔여덟 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 에세이집으로, 단 두 편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에세이라는 명명으로 이 글들을 온전히 지칭하기 어려운 것은, 그 형식과 발화의 자유분방함이 사강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영혼의 소유자를 대변하듯 실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는 잡지 기고 글부터 편지, 인터뷰, 설문지, 흩어져 있는 메모를 한데 모은 인상을 주는 글까지, 우리는 이들 글에서 ‘자유로움’으로 대표되는 사강의 진면목을 작가의 소설이 아닌 작가의 사담(私談)으로 만나게 된다.
동시대를 함께했던 예술가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추억했던 사강. 한 재판정에 서서 ‘나한테는 나를 망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명의 인간이 지닌 환멸과 정열을 떠올리게 했던 사강. 마르셀 프루스트를 좋아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을 필명으로 삼아 문단에 등장했던 사강. 견딜 수 없이 고독했던 사강….
이 책에서 사강은 만남마다 교유했던 인물들의 신비로움을 들려주지만 한편으로, 사강만의 그 짙은 허무와 권태의 냄새가 글들 저변에 깔려 있는 것 또한 우리는 느끼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늘 삶이라는 부조리로부터 달아나고자 했으나 그만큼 삶에 사랑이 가득했던 사강 자신의 삶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우리 앞에 되살아나는 그 이름은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일 것이므로.
목차
리틀 블랙 드레스
[보그] 크리스마스 특별호에 대한 나의 생각 / 젤다 피츠제럴드 / 이브 생 로랑 / 빨간 머리의 배후 조종자, 내 친구 베티나 / 패션에 정신을 잃은 두 연인, 헬무트 뉴튼과 페기 로슈 / 이자벨 아자니의 새로운 스타일 / 페기 로슈, 그 절대적 스타일
무대 뒤의 고독
애바 가드너 / 카트린 드뇌브, 금발의 상흔 / 조지프 로지 / 제임스 코번 / 페데리코 펠리니, 이탈리아의 러시아 황제 / 제라르 드파르디외 / 로베르 오셍 / 비비(BB)의 어머니인 것처럼 / 오슨 웰스 / 누레예프, 늑대의 얼굴 그리고 러시아인의 웃음
극장에서
「나의 사랑에 눈물 흘리다」 / 「착한 여자들」 / 「더 게임즈 오브 러브」 / 「모데라토 칸타빌레」 / 「코 후비기」 / “나는 오스테를리츠에 갔었소” / 「라벤투라」 / 존 오스본은 분명 셰익스피어를 좋아했을 것이다 / 「테라스 위에서」 / 「사이코」
정말 좋은 책에 대하여
사랑의 편지, 권태의 편지 / 위대한 피츠제럴드 /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편지 / 어린 시절에 만난 도시의 방랑자 / 독서 대가족고별의 편지
스위스에서 쓴 편지
웃음에 대하여 / 이지적인 젊은이 / 성공한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조언 / 어떤 콘서트 / 스위스에서 쓴 편지 / 신문을 읽으며 / 이상한 버릇 / 눈 속에서 글을 쓰다
대화 그리고 그 밖의 이야기
사강과 유행 / 내가 시골 여자를 택한 이유 / 서른, 청춘은 끝났다 / 정말 좋은 책을 쓰고 싶다 / 프랑수아즈 사강과 함께한 일주일 / 대화 / 마르셀 프루스트의 질문
옮긴이의 주
수록문 출처
옮긴이의 말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은이), 김보경 (옮긴이)
출판사리뷰
우리 앞에 되살아나는 그 이름들
이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이 195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후반 사이 각종 잡지에 발표했던 마흔여덟 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 에세이집으로, 단 두 편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에세이라는 명명으로 이 글들을 온전히 지칭하기 어려운 것은, 그 형식과 발화의 자유분방함이 사강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영혼의 소유자를 대변하듯 실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는 잡지 기고 글부터 편지, 인터뷰, 설문지, 흩어져 있는 메모를 한데 모은 인상을 주는 글까지, 우리는 이들 글에서 ‘자유로움’으로 대표되는 사강의 진면목을 작가의 소설이 아닌 작가의 사담(私談)으로 만나게 된다.
1부 ‘리틀 블랙 드레스’는 사강이 이브 생 로랑, 베티나 그리지아니, 페기 로슈 같은 패션계의 인물들과 교유한 내용을 담고 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조예가 깊었던 사강은 명석하고 열정적이며 타협이라곤 모르는 동시에 관대하기도 한 이브 생 로랑을 발견하고, 이십 년 지기 친구 베티나 그리지아니를 ‘학창 시절처럼 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깔깔’ 함께 웃는 단짝으로 묘사하며 그녀와의 추억을 돌아본다. 이처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패션계의 인물들을 사강의 시선을 통해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신선한 경험이다. 2부 ‘무대 뒤의 고독’은 사강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배우들과의 만남을 그려낸다. 얼음처럼 차갑고 완벽한 외모 뒤에 숨겨진 카트린 드뇌브의 상처와 분노한 황소의 노란 눈동자를 가진 오슨 웰스를 향한 무한한 애정, 제라르 드파르디외에 대한 예언과도 같은 우려가 담긴 이 글들은 무대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쓸쓸한 이면을 사강의 시선으로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3부 ‘극장에서’는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사강이 바라본 프랑스 영화계의 현주소라 할 만한 열 편의 영화평론이 실려 있다. 영화사 전체에 걸친, 거장의 대표작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저명한 소설을 영화화한 피터 브룩의 「모데라토 칸타빌레」,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클로드 샤브롤의 「착한 여자들」 등 사강은 때론 냉철한 비평가의 시선으로, 때론 헤어날 수 없는 감동에 빠진 관객의 표정으로 이들 영화들을 새롭게 선보인다. 4부 ‘정말 좋은 책에 대하여’에는 작가 사강의 민낯이 드러나는 글들이 포함돼 있다. 한때의 사랑을 회고하는 내밀한 기록 「고별의 편지」, 사강이 곁에서 지켜본 있는 그대로의 장 폴 사르트르의 마지막 초상, 책보다 장엄한 세계를 일깨우게 된 열여섯 적 일화를 소개하는 「어린 시절에 만난 도시의 방랑자」 등은 작가이기 전 한 사람의 사강을 만나게 된다.
5부 ‘스위스에서 쓴 편지’에는 웃음이 가진 성격, 남을 웃기는 능력에 대한 동경을 담은 「웃음에 대하여」와 사강의 대표적 특징인 남녀의 심리묘사를 주로 보여 주는 짧은 픽션 「어떤 콘서트」,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이 주는 자양분에 대해 사색하듯 말하는 「스위스에서 쓴 편지」 등 특정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산문들이 빛을 발한다. 마지막 6부 ‘대화 그리고 그 밖의 이야기’에는 어릴 적 어머니가 사 준 모자에 대한 일화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사강과 유행」, 동일한 질문을 일체의 장막을 치지 않고 자신의 면면을 드러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질문」 등 사강의 사사로운 글들이 한데 모였다.
사강의 시대, ‘사강’이라는 이야기
“자, 이젠 끝났다. 시간을 낭비하고 쓸데없이 불안해 하며 보낸 날들과 하얗게 지새운 파리의 숱한 밤은, 이젠 그만하면 됐다. 겨울은 지나갔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어떤 것이 일어나야만 했다. 글로 쓰인 어떤 것이. 이런 잃어버린 낙원이길 그만두고, 주인공들이 전설이길 그만둔 책이. 물론 생각만 그랬다. 무엇보다 동이 틀 무렵, 가장 먼저 일어난 자동차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피곤함이 밀려오면서 뚜렷하게 의식이 돌아올 때면, 썰물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난 장면들이 오버랩되어 펼쳐지곤 했다.”
-「눈 속에서 글을 쓰다」 중에서
동시대를 함께했던 예술가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추억했던 사강. 한 재판정에 서서 ‘나한테는 나를 망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명의 인간이 지닌 환멸과 정열을 떠올리게 했던 사강. 마르셀 프루스트를 좋아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을 필명으로 삼아 문단에 등장했던 사강. 견딜 수 없이 고독했던 사강….
이 책에서 사강은 만남마다 교유했던 인물들의 신비로움을 들려주지만 한편으로, 사강만의 그 짙은 허무와 권태의 냄새가 글들 저변에 깔려 있는 것 또한 우리는 느끼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늘 삶이라는 부조리로부터 달아나고자 했으나 그만큼 삶에 사랑이 가득했던 사강 자신의 삶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우리 앞에 되살아나는 그 이름은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