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중만(金重晩, 1954- )은 유학 일세대의 뉴웨이브 기수로 사진의 대중화를 일으킨 사진가다. 그는 1975년 프랑스 니스의 아틀리에 장 피에르 소아르디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데뷔한 후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의 피사체를 담아내는 최고의 패션사진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패션 사진 외에도 사십여 년 동안 팔십만 장에 가까운 사진을 찍으며 꽃, 동물, 인물, 풍경 등 모든 범위에서 개성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2010년대부터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자연에 눈을 돌려 그 속에 깃든 한국인의 정신을 표현함으로써, 팝적인 대중성과 클래식한 풍모 모두를 완성도있게 보여 주었다.
목차
작가론: 나르키소스의 수면(水面), 어느 떠돌이별의 기록 / 이건수
작품과 사진설명
국문연보
영문연보
저자
김중만 (지은이), 이건수 (글)
출판사리뷰
사진의 발견
1970년, 김중만은 정부 파견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로 떠나게 된다. 당시 열여섯이었던 김중만은 학교도 마땅히 없는 시골 마을에 정착했기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된다. 고등학교를 거쳐 미술대학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하게 된 그는, 그림과 달리 짧은 시간에 인화되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유학시절 이방인으로서 겪게 되는 이질적인 시각 환경은 그의 청년기의 중요한 탐험지가 되었고 ‘순결한’ 흑백공간으로 탄생하게 된다.
김중만의 첫 프레임이 시작된 ‘섹슈얼리 이노선트(Sexually Innocent)’ 연작의 주된 매개는 손이다. 손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풍경과 표정으로 김중만은 감춤과 숨김, 그리고 드러냄의 미장센을 구성해낸다.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보다 손으로 가림으로써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손으로 가려진 얼굴과 은폐를 원하는 육체는 그것이 열려 드러났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본성을 드러낸다.
김중만 사진의 본격적인 시작은 1985년과 1986년 한국에서 두 차례의 추방을 겪은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의 부당함에 항의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로스앤젤레스로 내쫓긴 김중만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비참했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추방인으로서의 삶은 그의 사진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고 ‘추방의 나날’ 연작으로 남았다. 다른 사진가와 구별되는 김중만 본연의 색채와 톤, 화면의 밑바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어두운 색채의 심연(深淵)은 이때부터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섹슈얼리 이노선트’ 연작은 카메라의 검은 방에 놓인 타자의 세계에 집중했다면 1980년대 ‘추방의 나날’ 연작의 이미지들은 모든 피사체들이 김중만의 고독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사진가로서의 길
1998년 겨울, 김중만은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하셨던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의 대중적 파급력은 바로 이 ‘동물왕국과 아프리카 여행’ 연작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야생 동물들과 생동감 넘치는 맹수들의 움직임은 도시 생활에 길든 그를 자극했다. 케냐, 보츠와나, 탄자니아를 무대로 아프리카를 기록해 나가며 야생의 본능으로 충만한 아프리카 땅의 맨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매일 아침 초원에 나가 동물들을 뒤쫓다가 돌아오는 생활은 사진가로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중만 사진의 여러 갈래 중에서 지금의 그를 유명하게 만든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장르는 인물과 패션이다. 오랜 기간 동안 상업사진계에 머물렀지만 특히 2000년부터 2006년 동안 집중적으로 그가 이룬 업적은 우리 대중문화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킨 작업이었다. 투박하지만 진실함이 느껴지는 가수 김현식의 발, 일본군위안부였던 박옥련 여사, 니스 유학시절 우연히 만났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등 당대 최고의 인사들과 함께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달콤한 인생」(2005), 「괴물」(2006), 「타짜」(2006) 등의 영화 포스터를 작업했다. 김중만이 찍은 인물사진의 빛의 입자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아우라’ 가득한 사진은 감각적인 시선의 영역 너머에 있는 인식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동시키며 눈앞의 차원이 아닌 저 너머의 세계일 듯한, 얼룩진 이상향을 보여 준다.
사진의 보편적인 향유
상업사진계에서 잘 나가던 김중만은 2006년 고비사막을 갔다가 종교적 결의에 가까운 예술적 개심(改心)을 하여 상업사진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후 한국의 문화유산과 자연을 답사하며 그의 생애 처음으로 진지하게 우리나라의 풍경과 그 속에 깃든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대 ‘한국의 재발견’ 연작은 서구화된 감성으로부터 한국인의 감성으로 전이하고 조정한 눈높이의 산물이다. 우리 문학과 회화에서 드러나는 ‘생략’이라는 미감을 김중만은 태생적으로 발견하여 쓰고 있다. 그는 고전주의적인 작법의 기준, 즉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이라는 예술의 기초에 충실하고 있다. 〈우리 다시 만나리〉(p.146)에서도 여지없이 생략과 축약의 모방법(mimesis)을 견지한다. 전부가 아닌 일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는 대규모의 전시를 꿈꾸면서도 전 세계인에게 자신의 사진이 일 달러 정도로 공평하고 민주적으로 보급되길 소망한다.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의 민주적인 소비성을 논한 것과 마찬가지의 철학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간편한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누구나 사진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상업사진과 순수사진의 경계를 허물며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이 지닌 환경적 반목을 거의 완벽하게 극복해낸, 보기 드문 사진가인 그이기에 새롭게 변화하는 기술의 혁신이 가져온 변화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