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수전 손택(Susan Sontag)과 더불어 존 버거(John Berger)는 이십세기 사진에 관한 가장 독창적인 글쓰기를 한 작가다. 미술비평가, 소설가, 사회비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존 버거는 사진에 관한 글도 많이 남겼다. 그는 1960년대 중반이 되자 미술과 소설을 넘어서는 영역으로 관심사를 확장했고, 사진가 장 모르(Jean Mohr)와의 협업으로 사진과 더욱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67년부터 2007년까지 사십 년에 걸쳐 씌어진 그의 사진 에세이들로, 예리한 감각을 지닌 작가 제프 다이어(Geoff Dyer)에 의해 한자리에 모였다. 존 버거에 관한 비평서 『말하기의 방법(The Ways of Telling)』의 저자이자 『존 버거 선집(Selected Essays of John Berger)』의 엮은이기도 한 제프 다이어는, 누구보다 버거의 작품세계 전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버거의 사진 에세이에는 사진가나 이론가의 글에서는 볼 수 없는 바깥의 시선이 담겨 있다. 큐레이터나 사진연구자의 권위를 가지고 사진에 접근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글은 축적된 지식의 결과라기보다는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담론이나 기호학에 빠져들지 않았고, 대신 대상과 친밀하게 동일화함으로써 스스로 이론이 되어 버릴 정도로의 집중을 발휘했다.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그의 시선은 때때로 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이 책에는 다른 저서에 포함된 사진에 관한 글 외에,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전시회 평문, 사진집 서문이나 후기 등, 총 스물네 편의 에세이가 시간 순서에 따라 사진가들의 주요 작품과 함께 실려 있다.
목차
책머리에 제프 다이어
제국주의 이미지
사진의 이해
포토몽타주의 정치적 활용
고통의 사진
신사 정장과 사진
폴 스트랜드
사진의 활용
고통의 사진
신사 정장과 사진
폴 스트랜드
사진의 활용
외양들
이야기들
농부들의 그리스도
유진 스미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산다는 것의 의미
앙드레 케르테스의 『읽기에 관하여』
지하철 구걸하는 남자
마르틴 프라읔
장 모르: 초상화를 위한 스케치
지구의 크기만 한 비극
알아봄
카르티에-브레송에게 바치는 헌사
여기와 그때 사이
마르크 트리비에의『나의 아름다운』
이트카 한즐로바의『숲』
아흘람 시블리의『정찰병』
주
수록문 출처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존 버거
출판사리뷰
사진, 일상이 되어 버린 ‘무기’
“각각의 사진은 현실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시험하고, 확정하고, 구성해 나가는 수단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사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그리고 우리를 향하고 있는 무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_존 버거, 「사진의 이해」 중에서.
책의 전반부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평론가 존 버거의 깊이 있는 탐구로 시작된다. 그는 이제 이미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버린 사진이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가령 첫 에세이, 1967년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시신을 찍은 사진에 대해 쓴 「제국주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사진에 담긴 숨은 목적을, 우리를 향하고 있는 은밀한 칼날을 발견하게 된다. 1972년에 쓴 「고통의 사진」에서는 정치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종종 사진에 묘사된 고통들을 정치적 결정들과 분리시키고, 그를 통해 그 고통들을 인간이 처한 영원불변한 조건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사진도 ‘이상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관습이나 맹목에 의해 지각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진실의 연결고리 안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의식에게는 그러하다. 존 버거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독자들이 스스로 답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이끈다.
사진가들과 나눈 내밀한 대화
“사람들이 마치 마이크 앞에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가올 때처럼 당신에게, 당신의 렌즈 앞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면 큰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야만 합니다. 그건 그들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뜻이죠.” _세바스치앙 살가두, 「지구 크기만 한 비극」에 실린 존 버거와의 대화 중에서.
책의 후반부는 앙드레 케르테스(Andre Kertesz),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와 같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사진가들부터, 모이라 페랄타(Moyra Peralta),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 크리스 킬립(Chris Killip), 이트카 한즐로바(Jitka Hanzlova), 마르크 트리비에(Marc Trivier), 닉 와플링턴(Nick Waplington), 아흘람 시블리(Ahlam Shibli)와 같은 아직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노년의 사진가들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있는 작업을 하는 젊은 사진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존 버거는 그들의 작품 세계를 파고들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그들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대화하거나, 편안한 호흡으로 사진가를 회고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한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사진가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글들이 씌어진 사십 년의 세월 동안 존 버거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글을 써내는 미술평론가에서, 부커상 수상 작가를 거쳐, 농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활동가 작가가 되었다가, 이제 스스로 ‘이야기꾼’으로 정의하는 노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의 여정 속에서도 그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적 기준은 명료하다: “이 작품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를 알고, 주장할 수 있게 도움 혹은 용기를 주는가?” 그가 이미 1960년에 선언한 이 생각은, 사진이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으며 또 앞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도 자연히 연결된다. 이 책에는 그 질문들을 때론 강경하게, 때론 나지막이 던지는 그의 모습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사랑과 연대의 마음’과 함께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