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강릉 고택 선교장의 ‘열화당’에서 출간한 해남 고택 ‘녹우당’ 이야기
한국 서남쪽의 가장 끝인 해남에는 해남윤씨海南尹氏 어초은파漁樵隱派 종택 녹우당이 자리하고 있다. 녹우당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면서 이곳 연동마을에 터를 잡고 오백 년 넘게 전통을 지키며 가업家業을 이어 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택이다.
열화당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택의 역사와 그 집안의 학문, 문화, 예술을 정리하는 책으로 지난 2011년 발행한 『선교장』(글·사진 차장섭)에 이어 그 두번째 책인 『녹우당』을 선보인다. 이 책은 2012년 4월 해남윤씨 녹우당 주인 윤형식 종손이 선교장 출신의 열화당 발행인을 찾아와 출판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기웅 발행인은 서문에서 “어느 종가든, 그 외태를 관리 보존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외형의 보존 관리뿐 아니라, 종가의 실체라 할 수 있는, 오랜 세월 그 집안에 서려 온 큰 생각, 즉 가풍家風을 이어 나가는 일이 더해져야 하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 종가의 가치가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면서, 이어서 “나는 종종, 한 국가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국민, 영토, 주권의 세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듯이, 종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종산宗山과 종인宗人들, 그리고 그들의 종가정신宗家精神 즉 종혼宗魂이랄까, 이 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나의 생각을 강조하곤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발행하기로 결심하게 된 당시를 회상하며 “이 책은 자신의 역사와 뿌리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종혼의 삶을 사는 데 디딤돌이 되도록 만들어져야 했다”라고 출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목차
발행인의 서문
한 문화재 종가宗家의 참된 기록을 향하여
A Summary
제1장 가업家業의 터를 닦다
1.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집
2. 시조를 모신 곳, 도선산 한천동
3. 세거시원지世居始原地 덕정동
제2장 재지양반在地兩班 가문으로 성장하다
1. 중흥조 윤효정의 해남 입향
2. 해남정씨海南鄭氏의 사위가 된 사람들
3. 연동마을에 뿌리를 내리다
4. 녹우당의 공간구성
제3장 원림園林을 경영하다
1. 사계절 푸른 녹우당 원림
2. 유배지에서 돌아와 구축한 원림, 수정동
3. 꿈속에 현몽現夢하여 얻은 금쇄동
4. 고산 원림의 완성, 보길도
5. 윤선도의 유배생활
제4장 학문과 문화예술을 꽃피우다
1. 문화예술의 교유공간, 녹우당
2.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낸 윤선도의 문학
3. 기구한 운명 속에서 피어난 꽃, 윤이후
4. 공재 윤두서의 학문과 예술
5. 아버지의 화풍을 이은 윤덕희
6. 녹우당과 대흥사의 인연
7. 천수天壽 누린 해남윤씨 사람들
제5장 사림정치기士林政治期의 해남윤씨
1. 해남에서 성장한 호남 사림들
2.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해남윤씨
3. 중국에 사신으로 간 해남윤씨 사람들
4. 역사 속의 라이벌, 윤선도와 송시열
5. 격랑의 명?청 교체기
제6장 바다를 경영하다
1. 바다를 향한 꿈
2. 진도 굴포 간척
3. 중국의 닭 울음소리까지 들리는 맹골도
4. 해도海島에 조성한 이상향, 보길도
5. 인조를 위해 조성한 행궁, 보길도 낙서재
제7장 해남윤씨가의 재산 경영
1. 국부國富 칭호를 듣다
2. 실용을 택한 경세치용사상
3. 간척으로 토지를 확장하다
제8장 고문헌 속 해남윤씨 이야기
1. 중시조의 역사를 증명해 주는 노비문서
2. 「고산양자예조입안」 문서
3. 왕실에서 하사한 물품목록, 『은사첩』
4. 가풍을 담은 「충헌공가훈」
5. 해남윤씨 『임오보』
6. 대표적인 분재기, 「윤덕희동생화회문기」
제9장 시대의 갈림길, 근대에서 현대로
1. 천주교 최초 순교자 윤지충
2. 가문 중흥의 영부英婦, 광주이씨 부인
3.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가업의 계승
주註
참고문헌
글쓴이의 말
녹우당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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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윤섭 저자(글),서헌강사진
출판사리뷰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녹색의 장원’
녹우당은 풍부한 경제적 부富를 기반으로 학문을 증진시키고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를 주도하여 호남 문화예술의 한 맥을 차지할 만큼 그 문화적 공간의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이 집에 들어서면, 자연과 인간이 합일合一된 터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과의 일치를 꿈꾸었던 고산 윤선도의 취향처럼,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 녹우당 사람들은 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세월의 풍파와 시련을 다 이기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호방한 자연의 길지吉地에 터를 잡고 학문과 문화예술을 꽃피운 이 집에 무척 잘 어울리는 ‘녹우당’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형인 옥동玉洞 이서李?(1662-1723)가 짓고 써 준 당호堂號로, 덕음산德蔭山을 뒤로하고 주변 오십만 평에 달하는 자연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어, ‘녹색의 장원’이라 할 만큼 인간과 자연이 잘 조화된 이상향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녹우당 사람들은 열린 사고 속에서 새로운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며 시대에 부딪히면서 살았다. 녹우당 사람들은 고답적인 성리학적 규범 속에 갇혀 살지 않았다. 이들은 항상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고 선도했다. 중흥조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1476-1543)으로부터 시작된 『소학小學』의 실천윤리를 바탕으로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추구했던 박학博學, 이후 공재 윤두서(1668-1715)가 선도한 실학적 학풍과 예술의 세계, 그리고 정약전丁若銓·정약용丁若鏞 형제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가 된 윤지충尹持忠(1759-1791)에 이르기까지,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흐름은 녹우당 사람들의 독특한 가풍家風의 결과라 여겨진다.
녹우당 사람들이 이처럼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지 않고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이를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창의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녹우당 해남윤씨의 역사와 문화예술, 가풍과 경영정신
‘녹우당이 이처럼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씌어졌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중시조인 8세 윤광전尹光琠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 자료에 의하면 윤광전이 터를 잡고 산 곳은 탐진耽津 즉 지금의 강진군 도암면이었다. 그러다가 12세 윤효정 대에 와서 비로소 해남에 입향하게 되고, 가문을 일으켜 세우면서 ‘해남윤씨’라는 본관을 얻게 되었으니, 윤효정은 가문의 득관조得貫祖이자 중흥조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후 해남윤씨가 재지양반在地兩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이 집안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고산 윤선도가 조성한 수정동, 금쇄동, 보길도 등의 원림園林들, 그리고 그의 문학세계를 비롯하여 윤이후, 윤두서, 윤덕희 등 굵직한 인물들의 문화예술 세계를 이 책은 조명하고 있다.
한편 조선 16세기 사림정치 시대에 김종직金宗直을 필두로 어떠한 학맥과 인맥으로 해남윤씨가 사승師承, 사우師友 관계를 맺어 왔는가를 짚어 보고, 바다에 인접해 있는 지역적 조건에 따라 해남윤씨가에서 이뤄낸 간척사업과, 이를 통해 축적한 부富를 어떻게 경영해 왔는지도 살펴본다.
녹우당에는 현재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를 비롯하여 『해남윤씨 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윤고산 수적 및 관계문서(보물 제481호) 등 약 5,000여 점의 전적과 서화, 고문서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문헌의 의미와 이에 얽힌 이야기를 살피고 있으며, 끝으로 근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변화과정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녹우당 사람들의 역사, 문화예술, 학문적 가풍, 자연과 하나됨을 추구해 온 독특한 원림 조영의지, 그리고 바다를 향한 개척정신 등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으뜸가는 이 가문이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해남을 중심으로 한 인근의 지역사地域史와 그 시대적 흐름의 면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열화당에서는 『선교장』과 『녹우당』에 이어, 조선 후기 소론少論의 영수領袖였던 윤증尹拯 선생의 집인 ‘논산 명재明齋 고택’의 역사, 건축, 문화를 다루는 책(글·사진 차장섭)을 출간할 예정이며, 그밖에 우리나라 유수의 고택을 선별하여 그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