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77년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 이성복(李晟馥, 1952- ).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후 지난해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이르기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내놓은 그에게는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수줍게 자리잡았다. 근 사십 년 동안 고통스러운 시 쓰기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이제 지난 시간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시와 산문, 대담 들을 세 권의 책으로 엮어 선보인다. 1970-80년대 미간행 시들을 묶은 『어둠 속의 시』, 마흔 해 가까운 세월의 다양한 사유들을 엮은 『고백의 형식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이루어진 열정적인 대화들을 모은 『끝나지 않는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목차
서序
천씨행장千氏行狀
무기명의 시학
부치지 않은 편지 하나
부치지 않은 편지 둘
부치지 않은 편지 셋
비망록·1984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시절
『그 여름의 끝』이 끝날 무렵
마흔 즈음에
나무 이야기
시, 심연 위로 던지는 돌멩이
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이인성 선생에게
장봉현 선생에게
윤교하 선생에게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몽구스, 독두꺼비, 새끼 악어의 죽음 전략
시에 대한 각서
글쓰기의 비유들
불가능 시론試論
공부방 일기
저자
이성복
출판사리뷰
“지금 저는 영문자 Q로써 제 시적(詩的) 여정을 생각해 본답니다. 저는 이제 원래 시작했던 지점에 다시 왔고(이번 책 세 권이 Q의 마지막 궁글림에 해당하지요), 이제 그 남은 꼬리 부분이 여우 꼬리처럼 길지, 아니면 돼지 꼬리처럼 짧을지, 지금의 저로서는 알 수 없지요. 어떻든 남은 여생―꼬리가 원래 출발했던 그 지점, 즉 1976-1985년의 지점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어요.”
―이성복
어둠 속에 피어난 꽃
1977년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 이성복(李晟馥, 1952- ).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후 지난해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이르기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내놓은 그에게는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수줍게 자리잡았다. 근 사십 년 동안 고통스러운 시 쓰기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이제 지난 시간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시와 산문, 대담 들을 세 권의 책으로 엮어 선보인다. 1970-80년대 미간행 시들을 묶은 『어둠 속의 시』, 마흔 해 가까운 세월의 다양한 사유들을 엮은 『고백의 형식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이루어진 열정적인 대화들을 모은 『끝나지 않는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갑년(甲年)을 넘어선 시인은 이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자리가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가, 혹 그 달라짐이 발전으로 생각될 수 있는가. 시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1970-80년대 청년 이성복에게는 시가 전부였다.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살았던 그의 가슴속에는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들끓고 있었다. 그는 미지의 시에 대한 열정과 고통 속에서 좋은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며, 그 고통스러운 꿈속에서 태어난 시들은 당시 독자들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각인되었다. 이제 시인은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그 치열했던 시절의 견딜 수 없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불러내려 한다.
거울 속의 시간―시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더니 기껏, 빌어먹을…… 어머니한테는 말이 안 통한다
아무리 내가 어리석고 나의 시대가 어리석어도 할 말은 있다 카프카, 내 말 좀
들어봐 너처럼 누이들을 사랑한 사람은 없을 거다 누이들은 실험용 몰모트다
아니다, 장님-굴새우-속죄양이다 카프카, 누이들은 나의 시대, 창피 옴팍
당하고 양갈보가 되어도 나의 시대, 사랑한다 누이들! 너희는 잘못한 게 없다
나의 시대는 어리석고, 어리석었고 나는 어지러웠다 어머니, 당대의
씨암탉이시여, 당신이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으니 기껏, 어지러워요, 어머니!
―「병장 천재영과 그의 시대 둘」 중에서, 『어둠 속의 시』
1976년에서 1985년 사이에 씌어진 미간행 시 150편을 묶은 『어둠 속의 시』는,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두번째 시집 『남해 금산』(1986)과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한 이성복의 ‘풍경’이 처음 자리잡은 당시를, 시인은 그의 정신적 성장의 ‘부름켜’로 생각한다. 이 시절 그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비정상의 도시에서 날 선 언어로 선열한 아픔을 토해냈다. 그는 곤핍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 대신 썩어 문드러져 가는 상처를 상처 그대로 느끼며 아파했다. 능멸당한 누이 앞에서 그는 기껏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어머니를 찾는 자신의 나약함을 자책할 뿐이었다. 이 시들을 통해 독자는 이성복의 ‘치욕’과 ‘아픔’의 시편들이 태어난 자리를 정확히 되짚을 수 있으며, 시퍼렇게 살아 있는 감각적 언어, 말의 암편(岩片)들을 통해 ‘불가능’의 꼭짓점에 이른 오늘의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이 세 권의 책은, ‘출판사 열화당(悅話堂)’이 그 모태가 되는 선교장(船橋莊) 열화당 건립 200주년(1815-2015)을 한 해 앞두고, ‘인문열화 200년’이라는 오랜 염원 아래 선보이는 첫번째 출판이다. 그동안 책의 존재형식에 대해 탐구하고 실험해 온 열화당이 ‘문학은 결국 문자로, 책으로 완성된다’는 믿음 아래 세상에 내놓는 이 책들은, 문학출판의 다소 희귀하고 이채로운 본보기가 될 것이다. 표지의 ‘인문열화 200년’ 로고는 안상수 디자이너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