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루브르 만화 컬렉션 시리즈 제5권. 그동안 ‘루브르 만화 컬렉션’에 참여한 작가들 중 유일한 비유럽권 작가의 작품으로, 이 시리즈 중에서 유독 이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방드 데시네(bande dessinee, 만화의 연속된 컷 모양에서 비롯된 ‘그림이 그려진 띠’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프랑스 만화를 대변한다)와 망가(漫畵)로 불리는 일본 만화와의 표현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장기간에 걸친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그림에 함축적인 메시지와 작가의 철학을 녹여내는 방드 데시네와는 달리, 일본 만화는 독자의 기호를 염두해 둔 상업성을 기본으로, 치밀한 그림보다는 독자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드라마를 우선시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프로젝트이지만, 일본 작가에게 의뢰가 들어온 이상 일본다움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작가는, 방드 데시네와는 확연히 다른 일본 만화의 스타일로 루브르를 담아냈다.
저자
아라키 히로히코 (지은이), 서현아 (옮긴이)
출판사리뷰
“일본 상업만화계에서 아라키 히로히코의 작품은 다소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 만화에서는 보기 드문 그로테스크한 그림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구조와 기발한 아이디어, 보편적인 가치인 정의, 우정, 연민 등을 추구하는 내용과는 대조적인 과격한 표현 등, 소년만화라는 틀 속에 있으면서도 늘 이단적이며 실험적이다.” -역자의 말에서
루브르 박물관과 만화의 유쾌한 만남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만화전문출판사 퓌튀로폴리스의 기획으로 열화당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루브르 만화 컬렉션’. 첫번째 권 니콜라 드 크레시의 『빙하시대』를 시작으로, 마르크-앙투안 마티외의 『어느 박물관의 지하』, 에릭 리베르주의 『미지의 시간 속으로』, 베르나르 이슬레르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루브르의 하늘』에 이어, 그 다섯번째 권인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岸?露伴, ル-ヴルへ行く)』를 선보인다. 가장 고전적인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현대적인 예술매체인 만화와 손잡고 선보이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정형화되고 고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 왔던 ??박물관’을 배경으로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 등의 소재를 만화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김으로써, 예술에 관한 여러 담론들을 신선한 이야기로 대중과 함께 공감해 보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개성 넘치는 그림으로 지금껏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루브르를 보여 줄 이 만화들은, 만화 장르 특유의 유머와 위트로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유쾌하게 자극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검고 사악한 그림을 찾아서
신인 만화전에 응모할 작품을 그리기 위해 외할머니 댁에 머무르던 로한은 그 집에 세들어 온 의문의 여인 후지쿠라 나나세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로한에게 자기 고향 마을의 지주가 가지고 있다가 루브르 박물관에 넘긴 ‘세상에서 가장 검고 사악한 그림’ 『월하(月下)』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자유분방한 듯하면서도 어두운 그늘이 있는 그녀에게 로한은 완성된 작품과 함께 마음을 고백하지만, 알 수 없는 말만을 남긴 채 그녀는 떠나고 만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그 그림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 로한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중이라는 한 가지 단서만을 따라 파리로 찾아간다. 그런데 그 그림은 이미 폐쇄된 Z-13 지하창고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로한과 일행은 그림을 찾아 루브르 박물관 지하창고로 향한다. 그리고 깊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한 장의 그림을 발견하는 순간, 핏빛 서막의 전주곡이 시작된다.
이 작품은 아라키 히로히코가 이십 년 이상 연재해 오고 있는 대표작 『조조의 기묘한 모험』의 등장인물인 만화가 ‘키시베 로한(岸?露伴)’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수수께끼의 그림을 찾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호러 서스펜스다. 『조조의 기묘한 모험』은 특수한 능력을 지닌 조스타 집안 사람들의 투쟁을 통해 용기와 인간애를 그려내는 모험 활극으로, 로한은 그 중 네번째 이야기인 「다이아몬드는 부서지지 않는다」편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정식으로 소개되는 아라키 히로히코의 작품인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는, 『조조의 기묘한 모험』의 인물을 등장시킨 스핀오프(spin off)이다. 그러나 인물 간의 대결에 중점을 둔 원작보다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강한 데다가 이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특유의 현란한 기교와 색감을 억제하고 일본적인 색채와 나른한 관능미까지 더하고 있어,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일본만화계의 이단아 아라키 히로히코가 그린 루브르
아라키 히로히코의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는 그동안 ‘루브르 만화 컬렉션’에 참여한 작가들 중 유일한 비유럽권 작가의 작품으로, 이 시리즈 중에서 유독 이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방드 데시네(bande dessin?e, 만화의 연속된 컷 모양에서 비롯된 ‘그림이 그려진 띠’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프랑스 만화를 대변한다)와 망가(漫畵)로 불리는 일본 만화와의 표현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장기간에 걸친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그림에 함축적인 메시지와 작가의 철학을 녹여내는 방드 데시네와는 달리, 일본 만화는 독자의 기호를 염두해 둔 상업성을 기본으로, 치밀한 그림보다는 독자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드라마를 우선시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프로젝트이지만, 일본 작가에게 의뢰가 들어온 이상 일본다움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작가는, 방드 데시네와는 확연히 다른 일본 만화의 스타일로 루브르를 담아냈다.
전통 일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름이나 파도를 연상시키는 문양에, 프랑스의 삼색기(三色旗)를 오마주하여, 흰색, 빨간색, 파란색을 사용한 표지 일러스트에서부터 강렬하게 시각을 자극하며 단박에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일본 만화계에서도 독보적인 아라키 히로히코만의 기묘한 매력까지 더해져 한 편의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갑자기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고, 보이지 않는 자동차에 몸이 짓이겨지기도 하고, 온몸에 물이 차 터져 버리기도 하는 등, 아라키 작품 특유의 잔혹한 인체묘사가 유감없이 펼쳐진다. 사실 그의 작품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독자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자극한다는 점이다. 역동적인 구도와 기괴하게 과장된 포즈는 특유의 잔혹한 묘사를 더욱 강조하고, 치밀한 계산 하에 배치된 효과음은 그 공간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두드러진 효과음이나 작중 인물의 과장되고 독특한 포즈 또한 그의 특징이다. 조각 작품이나 패션 화보 등에서 영감을 얻는 여러 포즈들은 팬들 사이에서 ‘조조 포징’으로 통하며, 여러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곧잘 패러디되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오마주로,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의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나는 프시케』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의 『죽어 가는 노예』 등을 패러디한 포즈를 선보이고 있어, 만화 속에 숨겨진 소장품의 이미지를 찾아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