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조형을 향한 화가 몬드리안의 끈질긴 실험과 탐구는, 회화작품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추상의 의미와 타당성을 명징한 논리와 문체로 확립한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이같은 기질은 스케치북에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정리하고, 동료 미술가, 비평가들과의 모임에서 자기 생각과 다른 이들의 말을 꼼꼼히 기록했던 그의 습관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며, 이는 후에 그가 신조형주의 이론을 정립하고 오십 편에 달하는 글을 발표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된다.
1917년 반 두스뷔르흐와 함께 만든 『데 스틸(De Stijl)』 창간호에 처음 수록하기 시작해 말년까지 지속적으로 발표된 몬드리안의 글들은 놀라운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인 삶 전체와 새로운 미술이론이 하나가 되는, 신조형주의가 실현된 유토피아의 추구였다. 이렇듯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이론에 관한 핵심적인 글 3편을 그의 회화작품과 함께 새롭게 편집한 것이 이 책 『몬드리안의 방』이다.
목차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세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에세이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
신조형주의 일반원리
역주
역자해설―몬드리안, 완벽한 삶과 예술을 꿈꾼 유토피안
수록문 출처 및 몬드리안 저작 목록
몬드리안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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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피트 몬드리안 (지은이), 전혜숙 (옮긴이)
출판사리뷰
세 사람의 대화로 풀어가는 추상화(抽象化) 과정의 일곱 단계
첫번째로 소개된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세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에세이」(1919-1920)는 몬드리안이 동료들과 토론했던 내용과 방식을 차용한 실험적 형식의 논문으로, 『데 스틸』에 13회에 걸쳐 발표되었다. 자연주의 화가 X와 문외한 Y, 추상-실제 화가 Z〔몬드리안은 추상이 조형적인 실제에 의해 표현된다는 의미에서 추상이라는 말 대신 추상-실제 (abstract-real)라는 말을 더 선호했다〕, 이 세 사람이 시골에서 도시로 걸어가며 펼치는 추상화(抽象化) 과정의 일곱 장면은, 그가 심취했던 신지학(神智學)에서 말하는 신비주의의 일곱 단계를 참조하여 정신의 각성 혹은 진화 과정을 풀어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평선 위로 달이 떠 있는 평원, 달빛을 머금은 하늘을 배경으로 어두운 윤곽을 드러내는 숲, 별들이 빛나는 광활한 모래밭에서 이루어지는 장면 1, 2, 3은, 그가 회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변형해 온 전형적인 주제들, 즉 자연풍경에 상응한다. 몬드리안 자신을 대변하는 Z는 자연 안에 이미 존재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장소에 따라, 또 그것을 보는 이들의 개별적인 지각능력에 따라 식별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새로운 인간은 자연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즉 불명확한 것에서 명확한 것으로 이행함으로써 새로운 조형을 발견하여, 마침내 삶의 불균형과 비극을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X: 난 아직도 우리가 자연을 벗어난, 즉 현실을 벗어난 조형적 표현을 발견해야 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Z: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 안에서, 그리고 현실 안에서 조형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회화가 이제까지 해 온 것들입니다. 즉 순수한 조형적 시각의 경로를 따라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을 통해 추상적 리얼리티에 도달한 것입니다.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장면 3에서, 자연주의 화가 X와 추상-실제 화가 Z가 나눈 대화.
이어지는 장면 4, 5, 6에서 세 사람은 풍차가 있는 풍경,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정원, 짙은 어두움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 앞에서 이야기를 펼쳐 간다. 즉 시골에서 도시로 접어들어, 자연물이 아닌 사람이 형상화한 것과 사람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추상화(抽象化)의 단계를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번째 장면에서 마침내 Z의 작업실에 도달하며, 여기서 나눈 긴 대화를 통해 신조형주의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을 완성한다. 이 장면에서 묘사된 Z의 작업실은 실제로 몬드리안이 파리에 마련한 자신의 방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그곳에는 모든 분야의 예술과 산업에서 조화와 균형의 미를 추구한 그의 이상적 삶의 형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Z: 건축에서의 새로운 색채조형은 여전히 드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인 신조형주의 회화보다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Y: 그러한 건축이 우리에게는 더 생명령이 있다는 말이군요
Z: 그렇습니다. 이미 그에 대해 논의한 바 있지요.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이 방의 어디에 서 있든 상관없이 정확한 효과를 가진다는 점이지요. 반면 회화는 단 하나의 시점에서 볼 때 효과가 있습니다. … 회화는 항상 독자적인 무엇인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말했듯이 회화는 한 사람을 위해서, 반면에 방은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신조형주의 장식은 사회를 위해, 사회 안에서 구상되어야 합니다.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장면 7에서, 문외한 Y와 추상-실제 화가 Z가 나눈 대화.
미래의 인간에게 바치는 유토피안의 메시지
두번째로 수록된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1920)은 신조형주의의 본질적인 개념들을 정리한 글로, 이 역시 모든 보편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에 대한 균형 잡힌 이원성을 창조하는 새로운 정신, 새로운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몬드리안은 회화뿐 아니라 여러 다른 예술 즉 음악, 조각, 공예, 건축, 문학, 연극, 춤에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와의 결별을 통해 새롭고 순수하며 표현적인 수단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끝으로 「신조형주의 일반원리」(1926)는 신조형주의 이론을 간단히 요약한 것으로, 신조형주의의 조형적인 수단과 원리, 형태와 색채의 문제가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 실제로 그의 회화를 비롯해 데 스틸의 회화, 건축,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간은 과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그리고 묘사했던 반면, 이제 새로운 정신을 통해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이러한 새로운 아름다움은 새로운 인간에게는 필수불가결하며, 그 안에서 인간은 자연과의 등가적인 대립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였다.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 중에서
금욕적이고 수수한 삶의 방식 뒤에 열정적인 기질을 감추고 있던 화가 몬드리안. 그의 도덕적 엄격함과 끈질긴 지적 성향은 고향 네덜란드의 정신적 풍토, 그리고 그곳에서 배출된 뛰어난 선배 예술가들에게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20세기초 불안한 전운이 감돌던 당시 유럽의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그의 이러한 재능을 그대로 묻혀 있게 놔둘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대 다른 추상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회화는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의 일부였다. 그것은 자연의 형상 뒤에 숨겨진 실재를 드러내, 인간의 정신을 비극적 우연성에서 해방시켜 고요하고 아름다운 완벽한 균형의 상태로 이끌어 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 전,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을 쓰며 미래의 인간들에게(Aux hommes futurs) 이 글을 헌정했다. 지나친 일관성과 단순한 논리 때문에 그를 독선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몬드리안의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의 글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와 여운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