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2006년 1월 18일부터 4월 9일까지 파리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에서 개최한 「합의하에 찍은 피해자들, 그 내면의 침묵」 사진전과 더불어, 브레송 재단 소장품들로 제작한 첫번째 책이다. 브레송이 1931년에서 1999년까지 촬영한 총 94컷의 초상사진을 엄선해 묶은 것으로, 한 세기의 정신을 움직였던 석학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시인, 소설가, 극작가, 가수, 철학자, 음악가, 배우, 과학자),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영원한 찰나(刹那)의 시선을 포착한 뛰어난 사진집이다.
목차
침묵들 - 아녜스 시르
시선을 주었다 - 장 뤽 낭시
도판 에즈라 파운드, 알베르토 자코메티, 롤랑 바르트, 이자벨 위페르, 장 주네, 사르트르, 수전 손태그, 마르셸 뒤샹, 자와할랄 네루, 파블로 네루다, 마틴 루터 킹 외 94컷
도판 목록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연보
저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은이), 김화영 (옮긴이)
출판사리뷰
초상사진집과 사진 에세이집, 두 권의 책으로 만나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사진가 중 한 사람이며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의 설립자인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 그는 1930년부터 본격적인 사진 공부를 시작해 유럽, 미국, 멕시코, 쿠바, 중동,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를 여행하며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고, 일생 동안 위대한 석학,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한편, 그는 1952년 출판인 테리아드의 권유로 자신의 사진집에 「결정적 순간」이라는 유명한 글을 썼는데, 이후 이 글은 우리 시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시학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지침서로 널리 읽혀 왔고, 이로써 카르티에-브레송은 예리하고 통찰력있는 비평가로 평가받아 오기도 했다.
2004년 8월 ‘세기의 눈’이라 불리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95세의 나이로 타계한 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전시가 잇달았고, 이 거장의 죽음에 세계 언론과 사진계의 포커스가 한동안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 동안 국내에서는 그의 사진집은 물론, 그가 쓴 사진 관련 글이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었다.(카르티에-브레송이 쓴 글 중에서는 「결정적 순간」만이 1986년 발행된 열화당 사진문고에 실렸었고, 그 밖에는 사진집 1권, 평전 1권이 소개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선보이는 카르티에-브레송의 초상사진집 『내면의 침묵(Le Silence interieur)』과 사진 에세이집 『영혼의 시선(Limaginaire dapres nature)』은, 여태껏 국내 독자에게 파편적으로만 알려져 왔던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세계를 재조감하게 하고, 한 시대의 관찰자로서 그가 포착해낸 사유의 이미지와 내면의 독백을 통해 그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내면의 침묵』―브레송이 응시한 세기의 초상들, 그 현존과 부재의 시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06년 1월 18일부터 4월 9일까지 파리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에서 개최한 「합의하에 찍은 피해자들, 그 내면의 침묵」 사진전과 더불어, 브레송 재단 소장품들로 제작한 첫번째 책이다. 브레송이 1931년에서 1999년까지 촬영한 총 94컷의 초상사진을 엄선해 묶은 것으로, 한 세기의 정신을 움직였던 석학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시인, 소설가, 극작가, 화가, 조각가, 철학자, 과학자, 음악가, 가수, 배우 등),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영원한 찰나의 시선을 포착한 뛰어난 사진집이다.
라이카(Leica) 카메라를 자신의 눈의 연장(延長)이라고 생각했던 카르티에-브레송. 미국의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Truman Capote)는 그를 가리켜 “라이카를 눈에 딱 붙인 채 즐거운 열의와 그의 온 존재를 가득 채우는 종교적 열정으로 찰칵찰칵 셔터를 눌러대기로 결심한 광란하는 잠자리” 같았다고 말한다.(p.8) 그에게 초상사진은 “마치 십오 분, 이십 분간의 정중한 방문 같은 것”이었는데(p.9), 당사자와의 이런 정대면한 대화, 침묵 속의 결투 속에서 그가 포착해내려고 한 건 그 ‘순간의 유괴’나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시적 동일시’가 아닌, 그 인물의 적나라한 ‘현존(現存)’ 그 자체였다. 동시에 이 사진들은 ‘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딱 정지된 그 자신의 시선’으로서의 카르티에-브레송의 또 다른 자화상적 편린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무엇보다 내면의 침묵을 추구한다. 나는 표정이 아니라 개성을 번역하려고 노력한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p.8.
카르티에-브레송의 시선은 항상 사진 속 인물의 시선과 팽팽하게 맞선 채 정지되어 있으며, 이 사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 인물의 개성의 편린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스튜디오 안에 마주앉아 있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침묵의 소유자 마티스(p.135)에서부터, 침실에서 이제 막 눈을 뜨자마자 입에 문 담배를 손에 쥐고 허공을 바라보는 자코메티(p.31), 어슴푸레 비치는 측광 속에서 부스스한 백발에 주름진 얼굴 사이로 형형한 눈빛이 인상적인 에즈라 파운드(p.53), 서재에서 입술을 꼭 다문 채 예리한 눈빛으로 뭔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사뮈엘 베케트(p.151),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마자 카메라에 잡혀 버린 퀴리 부부(p.45), 앞을 볼 수 없는 두 눈에서 금방이라도 뜨거운 노래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에디트 피아프(p.129), 기지개를 켜는 듯한 자세로 우리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자벨 위페르(p.91) 등 그는 20세기의 수많은 거장들을 직접 방문해,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들의 생활공간으로 침투한 저격수와 같이,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페르소나를 가진 초상들을 여기 표본해 놓았다.
이 책의 서두에 실린 큐레이터 아녜스 시르(Agnes Sire)의 글과 세계적인 현대철학자 장 뤽 낭시(Jean-Luc Nancy)의 글에서는, 초상사진 속 인물들의 침묵과 공간의 기하학적 시선을 따라가며 잡은 치밀한 사유가 사진과 함께 오랜 여운을 던져 준다.
더불어,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원판 인화작품을 복제하여 최상의 인쇄술로 프린트된 사진들은, 마치 전시장에서 사진가의 작품을 직접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며, 작품집으로서의 소장적 가치 또한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