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 존 버거의 2005년도 소설.『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평범하지만 깨닫기 힘든 진리를 잔잔하게 들려주는 소설로 그는 자신과 동일한 이름, 나이, 배경을 지닌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전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데, 픽션과 에세이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로운 허구성과 실제 삶이 밀착된 현실성 모두를 놓치지 않는다. 또한 미술평론가, 사진이론가, 사회비평가, 철학자, 화가, 시인, 소설가 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다양한 명칭들에 걸맞게, 존 버거는 모든 감각을 끌어와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왔던 무수히 많은 삶들을 추억하는 따뜻한 한 인물을 섬세하게 창조해냈다. 부커상 수상작인 『G』와 『우리 시대의 화가』 『결혼을 향하여』 등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념이 담긴 지적이고도 아름다운 이 소설은, 공간의 경계와 시간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명랑하고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들을 펼치는 한편,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할 애잔한 감수성을 환기시킨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께
1 리스본
2 제네바
3 크라쿠프
4 죽은 이들이 기억하는 과일들
5 아일링턴
6 퐁다르크 다리
7 마드리드
8 슘과 칭
8½
감사의 글
저자
존 버거 (지은이), 강수정 (옮긴이)
출판사리뷰
도시, 강, 그리고 동굴을 주유하며 풀어놓는 여덟 개의 이야기
주인공 존은 유럽의 여러 장소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이고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존이 발 딛는 곳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말을 건넨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옛 스승, 친구와 애인, 그리고 이름 모를 선사시대 예술가까지, 그들은 과거에 존과 함께 경험했던 일들을 추억하고, 존이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주는 듯한 충고를 던지기도 한다. 한편 이들이 만나게 되는 각각의 장소들은, 마치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존이 기억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이 책을 이루고 있는 여덟 개의 단편 중 일곱 개의 글제목이 바로 이 장소들을 나타내고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들은 얼핏 무관한 듯하다가도 어느새 서로 이어지고 얽히고 교차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카드놀이를 하는 것만 같은 리스본에서는 십오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딸 카티아를 찾아간 제네바에서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던 보르헤스를 떠올리며, 장사꾼들로 붐비는 크라쿠프의 노비 광장에서는 유년 시절 그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켄과 함께 수프를 먹는다. 또한 미술학교 동창생을 찾아간 아일링턴에서는 오래 전 서로를 만지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한 여자를 회상하고, 아르데슈 강물이 조각해낸 퐁다르크 다리의 쇼베 동굴에서는 수만 년 전 어둠 속에서 벽화를 그렸던 크로마뇽인 예술가를 불러내기도 한다. 마드리드의 한 호텔 라운지는 녹색 오두막 학교 시절 타일러 선생님의 잔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곳이며, 슘과 칭은 ‘폴란드 기수’를 닮은 친구 미렉과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 아버지를 추억하는 강이다. 이렇게 그들은 마치 그 공간에 영원토록 서려 있다가 존의 방문으로 인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되돌려진 시간의 흐름에 이끌려 장소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경계 없는 흐름, 아름다운 문장에 담긴 삶에 대한 철학적 주제
작가 자신이거나 혹은 가공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작가가 알고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는 존이라는 인물을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보면, 점점 더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인용부호가 사라진 문장들에서는 그와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실재하는 것인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이러한 점은 마지막 이야기 「슘과 칭」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화자는 일차대전 참전의 상흔을 집 앞의 작은 강 ‘칭’을 바라보며 씻어냈던 아버지와, 불법이민자로 파리에 머물다가 고향 폴란드에 정착하게 되는 미렉과 단카 부부의 가난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일상을 병치시킨다. 어린 시절과 현재, 영국과 폴란드라는 동떨어진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묶어내는 연결고리는, 이 두 곳에 작지만 아름다운 강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강 ‘슘’이 내다보이는 미렉의 집에서 그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존 자신이다.
그러나 그 모든 구분을 명확히 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다. 오히려 이러한 소설적 기법은, 아름답고 명료한 시적 문장들과 함께, 계급과 국적의 경계를 부정하는 글쓰기를 해 온 존 버거의 사상을 미학적으로 구현해내는 효과를 거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존 버거가 현존하는 영국 최고의 작가로 자리매김된다. 즉,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적 주제―인간의 소명과 양심, 용기와 딜레마, 문명과 도시화에 의한 인간소외 등―를 결코 과장되지 않은, 극도로 일상적이고 해학 넘치는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스며들듯 천천히, 그러나 더 깊고 큰 울림으로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이다. 특히 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노작가가 이 작품에서 선택한 ‘죽은 이’들의 목소리는,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추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것은 결코 환상적이거나 낯설지 않다.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어느새 고요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며, 허구의 세계를 떠나 생명력을 띠고 현실에서 아름답게 구체화한다.
망자들이 건네는 가냘픈 희망의 메시지
이처럼 존 버거는 지극히 평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통해 인간이 공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하나씩 깨달아 가자고 역설한다. 우리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아주 가까이, 바로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 있다는 암시가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존 버거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죽은 이들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한다”고 말하듯이, 주변을 맴돌다 불쑥 나타나 말을 건네는 소설 속 인물들은, 존에게 혹은 우리에게 삶의 구석구석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고 가느다란 희망을 공유할 수 있게끔 해준다. 존 버거의 언어를 빌린 죽은 자들의 희망은 곧 우리의 희망이 되어, 삶에 대한 긍정적인 호소를 받아들이고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