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대의 거목, 호암을 읽다
사업보국을 꿈꾼 한 경영인의 진솔한 자기고백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전 회장의 전기를 담은『호암자전』이 출간되었다. 한자 쓰기와 세로쓰기를 채택했던 1986년판을 21세기에 맞추어 손본 개정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자본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무역상사로 출발한 삼성이 OECD 국가경쟁력 30위권에 드는 선진국의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 지나온 험난한 여정을 호암이 손수 적어 내려갔다. 근현대 한국 최초이자 제일의 창조적 창업가로 손꼽히는 인물이 전하는 이 회고담에는 ‘사업보국’으로 요약되는 그만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함께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이 빠짐없이 담겼다. 그러나 이 자전이 단순히 한 경영인의 성공담을 넘어 인물의 결이 생생히 살아 있는 입체적인 기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격변하는 정세에 맞서 앞날을 제시해야 했던 리더로서 느낀 희로애락까지도 진솔하게 담아낸 덕분이다. 한국 경제발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냉철한 경영인이자, 시대의 파도에 맞서 스스로의 뜻을 이루길 포기하지 않았던 한 개인의 진면목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목차
서 序
제 1 편 청소년 시절
제 1 장 한일합방 해에 출생
제 2 장 서당에서 학교로
제 3 장 결혼, 그리고 도쿄 유학
제 4 장 세계 공황하의 대학시절
제 5 장 졸업증서 없이 끝난 학업
제 2 편 사업에 투신
제 1 장 사업 투신의 결의
제 2 장 정미·운수업으로 출발
제 3 장 2백만 평의 대지주로
제 4 장 삼성의 모체 삼성상회 설립
제 5 장 고향에서 해방 맞아
제 6 장 사업보국의 신념을 굳혀
제 7 장 이승만 박사의 추억
제 8 장 삼성물산공사의 설립
제 9 장 해방 후의 첫 일본방문
제 10 장 6·25 동란 발발
제 3 편 수입 대체산업
제 1 장 빈손으로 대구에 피란
제 2 장 제조업을 결의
제 3 장 제일제당 설립
제 4 장 국내기술로 공장 완성
제 5 장 제일모직 설립
제 6 장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제 7 장 유니언 잭 고지에 태극기를
제 8 장 산업자본의 형성
제 4 편 사회의 격동
제 1 장 시은의 대주주로
제 2 장 한국비료의 건설 추진
제 3 장 차관도입 교섭에 성공
제 4 장 120%의 세제
제 5 장 5·16 혁명 최고회의에 서한
제 6 장 박정희 부의장과의 첫 대면
제 5 편 우리가 잘 사는 길
제 1 장 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제 2 장 울산공업단지의 조성
제 3 장 통화개혁과 삼분파동
제 4 장 <우리가 잘="" 사는="" 길=""> 기고
제 5 장 비료공장건설을 재추진
제 6 장 유솜과 일본업계의 반대
제 7 장 미쓰이물산과 차관교섭
제 8 장 한일회담의 이면 지원
제 9 장 세계최대의 단일 비료공장
제 10 장 정치기류에 휘말린 ‘한비사건’
제 6 편 문화사업
제 1 장 문화재단 설립
제 2 장 교육과 도의문화의 진흥을
제 3 장 호암미술관 설립
제 4 장 매스컴의 경영
제 5 장 동양방송의 영상은 사라지고
제 6 장 용인자연농원에 건 꿈
제 7 장 위암 수술을 받고
제 7 편 전자중화학공업
제 1 장 전자, 그리고 중화학공업 시대로
제 2 장 조선 분야에 진출
제 3 장 플랜트 생산체제 갖추어
제 4 장 유화산업과 방위산업
제 5 장 생명보험과 백화점의 경영
제 6 장 한국의 얼굴 호텔신라
제 8 편 삼성의 장래
제 1 장 새로운 경영기법을 찾아서
제 2 장 반도체 개발을 결의
제 3 장 삼성반도체에 내일을 건다
제 4 장 기업은 영원한가
제 5 장 창업과 수성
제 6 장 보스턴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제 9 편 취미 편력
수집으로 개성을 안다
생활 속의 골프
국악과 서예로 정심 길러
건축미에 매료되어
《논어》, 인간형성의 근원
후기
호암연보우리가>
저자
이병철 (지은이)
출판사리뷰
시대의 거친 파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 사업보국
호암이 일군 사업력(事業歷)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지 백성으로서 사회적 제약에 얽매여 방황하던 젊은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의령의 한학자였던 선친 밑에서 유복한 성장기를 보내고 일본 유학까지 마쳤지만, 인생의 뜻을 세우지 못하고 골패노름에 빠져 늦은 밤 달그림자를 밟으면서 귀가하기 일쑤였다고 호암은 그 무렵을 회고한다. 그렇게 허송세월하던 그에게 “각성”의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어느 날 달빛을 받은 채 고요히 잠든 자녀들을 보며 무언가 해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 회심의 순간, 조선인이라 괄시받던 기억이 겹쳐 떠오르며 그는 마침내 ‘사업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다’는 일생의 목표를 세운다. 이러한 사업보국(事業保國)의 정신은 이후 호암만의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업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호암은 삼성물산을 세워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고, 이어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한국 고유의 산업자본을 건립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도 항상 탄탄대로만을 달리지는 않았다.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스럽던 정치적 상황으로 흔들린 적 또한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처음 마음에 새긴 뜻인 ‘기업으로 스스로를 세우고 국민 복지에 공헌한다’라는 결심을 되새기며 활로를 모색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다고 호암은 말한다. 즉, 정세를 가늠하는 차가운 통찰력과 사업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뜨거운 신념이 맞물리며 삼성이라는 거대한 배가 항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과 그 순간을 이끌었던 지도자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할 만하다.
무에서 유를 일군 창조적 창업가가 전하는 경영비법
호암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많지만, 한국 산업구조의 지형을 여러 번 뒤바꾼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다름 아닌 ‘시대를 앞선 창조적 지략가’라는 평가다. 독자들 역시 독립적인 산업기반이 전무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무역상으로 출발하여, IT업계를 이끄는 글로벌기업을 일구어낸 창업가에게는 어떠한 특출함이 숨어 있었는지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집어들 것이다.
호암은 50여 년 동안 자신만의 경영비법을 벼려온 과정을 보여주며 시대를 앞서 가는 기업가의 자질이란 무엇인지 그려낸다. 특히 젊은 시절 정미소와 토지투자사업이 실패로 끝나자,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낱낱이 가려냈다는 일화는 호암식 경영철학의 뼈대를 세우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때 그는 평생의 지표로 삼을 큰 깨우침을 얻는다. 사업을 벌일 때는 시기와 정세를 적확하게 꿰뚫어보고, 일단 판단이 서면 초기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 정진해야 한다는 큰 원칙을 발견한 것이다.
이른바 경영의 정도(正度)지만, 모두가 알아도 쉬이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대원칙을 기업 경영의 구석구석에 도입하고,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성과까지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호암의 성공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반도체 사업 또한 호암의 뚝심 있는 경영 스타일이 결실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유례없는 성장을 이룬 1970년대,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점차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산업으로 옮겨 갈 것이라 예측한 호암은 수많은 전문가와 기업가, 임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대적인 반도체 사업 육성에 나선다. 그 결과는 모두가 목격했듯 전례 없는 대성공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통찰과 이를 뒷받침하는 의지력으로 ‘삼성신화’를 그려낸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독자들은 현실 속에서 이상을 펼쳐내고야 마는 뚝심을 목격할 것이다.
‘삼성신화’에 가려진 호암의 사적인 세계
거목은 그 명성이 높을수록 그만의 사적인 세계가 가려지기 쉽다. ‘삼성 창업주’라는 명성의 그늘 아래 숨어 있던 호암의 인간적 면모 역시『호암자전』이 출간되고 나서야 세간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한학 공부에서 비롯된 유학자적 기질과 사소한 기호품까지도 일류를 고집했던 취향 등을 세세하게 담아낸 만큼, 호암이라는 인물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회고록인 덕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의 취미 편력뿐만 아니라 굴곡진 생애를 장식했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엿볼 수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호암은 빛나는 역사와 함께 어두웠던 순간들까지도 진솔하게 책 속에 새겨 넣으며 스스로의 말대로 “한 인간의 삶을, 겸허하게 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민족자본 건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리던 1970년대, 난데없이 ‘부정축재자 1호’라는 꼬리표가 붙어 검찰 조사까지 받은 사건은 이후로도 오랜 시간 깊은 회의감을 남긴 일생일대의 고비였다. 그러나 그는 ‘호수처럼 맑은 물을 잔잔하게 가득 채우고 큰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준엄함을 가져라’라는 뜻이 담긴 자신의 호 ‘호암’(湖巖)처럼 곧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국가 인프라 구축이라는 목표에 새로이 정진한다. 이 흔들림 없는 마음 경영의 밑바탕에는 오랜 시간『논어』등의 한문고전을 탐독하며 길러온 단단한 내적 규범과 더불어 자신의 소명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있었다고 호암은 담담히 말한다. 확고한 신념이 신기술과 첨단 지식보다 앞서야 한다는 호암의 이 같은 믿음은 책 곳곳에 수놓아져 있어, 불확실성의 시대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재계의 거목으로 올라선 창업가의 경영비법서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쳐든 독자들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기업 경영을 넘어 마음 경영의 바른 토양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