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불안한 삶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작품집의 제목,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해 고안한 사고실험으로, 이 작품에서는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처지, 삶과 죽음이 상존하는 상태를 상징한다. 1991년 등단해 지금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 온 소설가 이정은의 여덟 번째 소설집 『슈뢰딩거의 고양이』에는 연약한 존재들의 인생사를 담은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렸다. 부부 사이의 불평등,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 학교폭력 등 살아가며 누구나 마주할 법한 비극적 상황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작품 곳곳에서는 다양한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이 있는 고찰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정은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삶의 그늘을 낱낱이 들춰낸다. 그러나 현실의 괴로운 상처를 날카롭게 풀어내는 작가의 시선에는 시련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찾아내는 다정함이 담겨 있다. 작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불안하고 괴로운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통해 위로를 건넨다. 삶이 모두 잘 풀릴 거라는 위로가 아닌, 설령 괴롭다 하더라도 그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깊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위로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각자가 살아 온 시간의 의미를 짚어보게 만드는 책이다.
목차
작가의 말 6
예쁜 여자 죽이기 11
평론: 여성문제의 문학적 형상화 - 정체성 찾기 /문흥술
슈뢰딩거의 고양이 43
굿바이 슬픔 73
다마고치 101
아모르파티 129
소울메이트 163
월 플라워 191
사랑, 그 너머 소설 227
평론: 인간은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존재 /이승하
문지방을 밟다 289
작품해설 314
우리 삶의 불완전함이 우리 삶을 이끌어간다 /조완석
저자
이정은 지음
출판사리뷰
연약한 존재들의 인생사
소설가 이정은은 1991년「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첫 소설집『시선』을 출간한 이래 소설집『피에타』,『불멸』, 장편소설『그해 여름, 패러독스의 시간』,『삼월의 토끼』등을 써내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오랜 기간 꾸준히 소설을 집필해 온 이정은 작가는 이번 여덟 번째 소설집에서도 삶의 시련과 고통에서 길어낸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를 보여주었다.『슈뢰딩거의 고양이』에는 연약한 존재들의 인생사를 담은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렸다. 표제작「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는 주인공 선미가 자신의 편이라고는 없는 시댁에서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처한 모습을 그려냈다.「예쁜 여자 죽이기」에서는 성형수술과 부검을 연결 지으며 외모지상주의의 병폐를 드러냈고,「다마고치」와「굿바이 슬픔」의 한 대목에서는 집단에서 벗어날 수 없어 폭력마저 그저 견뎌내야 하는 학교폭력의 양상을 짚었다. 살아가며 누구나 마주할 법한 비극적 상황이지만, 이정은 작가는 이 상황들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작품 곳곳에서 작가의 다양한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찰을 찾아볼 수 있다.
삶의 그늘 속에서도 의미를 찾다
이정은 작가는 삶의 그늘을 낱낱이 들춰낸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비극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그러나 괴로운 현실을 속속들이 날카롭게 풀어내는 작가의 시선에는 상처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다정함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인간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친다. 작품 속에는 개인의 힘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의 억압이 촘촘하게 드러나 있다. 표제작「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주인공, 선미의 아버지는 여자도 장관을 하는 세상이 왔으니 여자라고 못 할 일이 무엇이냐고 말하지만 정작 선미는 시집살이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아모르파티」의 주인공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효도하라는 남편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예쁜 여자 죽이기」에서 현숙은 연하의 남편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타인의 평가에 괴로워하다 끝내 성형을 감행하고,「소울메이트」의 주인공은 노년의 사랑을 터부시하는 시선을 의식해 우정을 나누는 것마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굿바이 슬픔」의 주인공은 ‘신의 계획대로 고통을 겪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은총과 더불어 구원이 이루어’진다며 자신에게 주어졌던 불운한 환경을 오히려 신에게 선택 받은 것이라 말한다. 주인공은 사는 내내 남편을 위해 희생한 끝에 마지막에는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남편과 갑과 을이 뒤바뀐 상태로 살아간다. 이정은 작가는 이러한 삶의 궤적을 억압에 굴복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라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내일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작품집의 제목,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한 실험에서 유래한 말이다.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와 가이거 계수기, 방사능 물질을 넣어 둔다. 방사능 물질이 감지되면 기계장치가 작동되어 독이 든 약병을 깨트리게 된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그 안의 고양이는 살아 있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는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처지, 삶과 죽음이 상존하는 모순된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 이는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내일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아가며,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들어서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간들의 결과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작가는 괴로운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통해 위로를 건넨다. 후회로 남은 첫사랑과의 추억을 소설로 쓰려는 남자의 이야기,「사랑, 그 너머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내 인생의 사랑은 나를 중심으로 모이고 그 모든 사랑을 합쳐야 완전한 사랑을 그릴 수 있고 그래야만 소설이 될 수 있음을 내 가슴은 알고 있었다. 작가가 되는 것은 좀 더 인생 수업을 닦은 후가 될 것 같았다.’ 이정은 작가는 삶이 모두 잘 풀릴 거라 위로하지 않는다. 설령 괴롭다 하더라도, 그 시간들이 쌓이면 하나의 온전한 작품을 그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들 역시 살아 온 시간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