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안정효의 신작. 나락에 빠지는 두 사람의 심리변화와, 상처를 주고받는 대화를 심도있게 전개하여 독자를 휘감는다. 이 작품이 통속 연애물과 다른 점은 두 주인공이 낭만적인 사랑놀음에 빠져 현실과 아웅다웅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소설이 내어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줄곧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그들에게 외부 상황은 자신이 전혀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타인이다(부모의 사고, 갑부 양아버지, 예측할 수 없는 인연,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결혼제도).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안에 스스로 갇힌다. 주로 ‘도피’나 ‘자학’으로 주어진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주인공들은 더욱 큰 고통으로 빠져들고, 그런 스스로를 반성하며 실시간으로 지켜보기까지 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미늘’이 아니겠는가.
바다낚시에 대한 질박한 묘사도 빼놓을 수 없다. 낚시란 몇 시간이고 낚시터 계단에 퍼질러 앉아 무료하게 물을 쳐다보면서 상념하는 평화로운 여가 활동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바다낚시는 살갗을 찢는 바윗돌과 종잡을 수 없이 거센 바람, 미친 파도의 틈바구니에서 펄떡이는 생명과 승부하는 짜릿하고 으스스한 어떤 것이었다. 이 소재는 구찬과 수미, 한 전무의 심리 묘사와 절묘하게 섞이면서 정서적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미늘』은 소설에서 묘사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새삼 드러낸다. 정경 묘사는 독자가 앉은 자리를 순식간에 파도치는 돌바위 위로 바꾼다. 사소한 말 속에 품은 뜻을 상세히 읽고 나면 그 심리적 변화들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낚시 장면에서는 거친 파도 밑에서 미늘에 걸려 안간힘으로 뻗대는 감생이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고동소리가 내 가슴에서도 나고 있음을 흠칫 깨닫는다.
목차
들어가는 글 ㆍ 5
미늘 ㆍ 15
미늘의 끝 ㆍ 255
《미늘》읽기_ 김윤식(문학평론가) ㆍ 451
저자
안정효 저자(글)
출판사리뷰
낙반사고로 가족을 잃은 서구찬은 큰아버지의 양자로 입적되어 주변 가족들의 질시를 받는다. 장차 큰 재산을 나눌 입이 늘어서다. 성인이 되어 백화점을 물려받고 결혼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 자체가 자신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으로 산다. 그 때문인지 우유부단하고 판단력 없는 그는 외부의 억압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자살을 꿈꾸며 낚시도구를 챙겨 바다로 간다. 자신의 삶과 선택요구에 대응하는 자신을 남의 물건처럼 꺼내 놓고, 끝없이 분석하고 충분히 고뇌한다. 인생이란 관찰하고 답을 얻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변호/변명자각/자기위안/자학/도피’의 구간을 무한반복한다.
한광우 전무는 그런 그를 묵묵히 지킨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 녹아들어 사는 한 전무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일을 하는 심플함을 보인다(여기서 자연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를 포함한다). 서구찬은 번뇌를 잊으려고 낚시를 하지만, 한 전무는 고기를 잡으려고 낚시를 한다. 구찬도 그 차이를 잘 안다. 하지만 자신을 바꾸는 것은 온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러던 중 남도의 바닷가에서 젊고 적극적인 수미를 만나 속세의 번뇌를 잊고 사랑에 탐닉한다. 쿨하게 떠나려던 수미는 구찬에게 깊이 빠져 그의 일상을 점점 침범하고, 그런 자신을 막지 못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본처인 재명에 대한 죄의식이 그녀를 구찬 특유의 무한반복 구간에 빠뜨린다. 시간은 그들을 여지없이 심판한다.
헤어졌던 구찬과 수미는 모종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난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전무와 셋이서 바다낚시를 간다. 거기서 구찬은 전말을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하고, 한 전무는 그 수습을 위해 섬에 남는다. 이제 주인공은 한 전무와 구찬의 본처 재명이다. 사고현장에서 재명은 한 전무를 만난다. 재명은 구찬의 무책임한 삶에 치이다가 결국 그를 저버리고 백화점을 넘겨받고, 특유의 깔끔한 운영으로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만들어낸 뒤였다. 한 전무는 그 동안 구찬에게서만 들었던 그들의 가정사를 재명의 입장에서 듣는다. 구찬, 수미, 재명의 수난 과정이 한 전무를 통해 종합된다. 구찬의 죽음이 자살이었나, 사고였나를 밝히는 근거는 물증이나 현장검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얽혀 산 방식이었다.
저자 안정효는 나락에 빠지는 두 사람의 심리변화와, 상처를 주고받는 대화를 심도있게 전개하여 독자를 휘감는다. 이 작품이 통속 연애물과 다른 점은 두 주인공이 낭만적인 사랑놀음에 빠져 현실과 아웅다웅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소설이 내어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줄곧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그들에게 외부 상황은 자신이 전혀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타인이다(부모의 사고, 갑부 양아버지, 예측할 수 없는 인연,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결혼제도).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안에 스스로 갇힌다. 주로 ‘도피’나 ‘자학’으로 주어진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주인공들은 더욱 큰 고통으로 빠져들고, 그런 스스로를 반성하며 실시간으로 지켜보기까지 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미늘’이 아니겠는가.
바다낚시에 대한 질박한 묘사도 빼놓을 수 없다. 낚시란 몇 시간이고 낚시터 계단에 퍼질러 앉아 무료하게 물을 쳐다보면서 상념하는 평화로운 여가 활동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바다낚시는 살갗을 찢는 바윗돌과 종잡을 수 없이 거센 바람, 미친 파도의 틈바구니에서 펄떡이는 생명과 승부하는 짜릿하고 으스스한 어떤 것이었다. 이 소재는 구찬과 수미, 한 전무의 심리 묘사와 절묘하게 섞이면서 정서적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미늘》은 소설에서 묘사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새삼 드러낸다. 정경 묘사는 독자가 앉은 자리를 순식간에 파도치는 돌바위 위로 바꾼다. 사소한 말 속에 품은 뜻을 상세히 읽고 나면 그 심리적 변화들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낚시 장면에서는 거친 파도 밑에서 미늘에 걸려 안간힘으로 뻗대는 감생이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고동소리가 내 가슴에서도 나고 있음을 흠칫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