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잘 숨고 뾰족한 어느 고슴도치의 기록
이 일기장의 주인은 자신을 ‘고슴도치’라고만 소개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긴 하지만 사실은 변두리로 물러나 조용히 머무르기를 좋아하고, 자신이 그어 놓은 선을 누군가 밟을라치면 가시를 바짝 세우고 경계태세를 갖추는 모양이 꼭 고슴도치 같다고 했다. 세상살이에 영 자신은 없지만 꿋꿋이 하루를 살기를 원하고, 꽁꽁 숨기도 잘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맘껏 자신을 열어 보이고 싶다고 했다. 하루는 웃고 다른 날은 울면서 설레였다가도 한없이 우울하고 해질녁의 고즈넉함과 한밤의 쓸쓸함을 좋아하되 또 한편으로는 한낮의 소요 속으로 눈감고 뛰어들고 싶다고도 했다. 이 책은 그러한 고슴도치가 오랫동안 쓴 일기를 엮은 것이다.
목차
1장 도시 숲에 사는 고슴도치
꿈에서 구인광고를 보았다. 세상살이기술 1급 소지자 구함. 어떤 학원을 등록하면 이 자격증을 딸 수 있게 해주나 … 우리 모두는 포장의 달인이다. 그것이 지능적이냐 어설프냐의 차이일 뿐. 나는 지금까지 알몸으로 서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2장 삐죽삐죽 가시가 돋는 날
사람과 돈과 지위가 일치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 한 악수하고 싶지 않은 인간에게 웃어줘야 한다 … 회식자리, 이사님이 한 마디 하신다. “시장을 봐야지, 사장을 보면 안 된다.” 본인부터 그래보시지?! … 고상한 여우인 척하지만 사실은 외로운 돼지들 천지.
3장 비오는 밤 하염없는 생각들
나는 만년설로 뒤덮인 이곳에 불시착한 비행기다. 이제 다시는 본국으로 갈 수 없다. 둘러보니 불시착한 비행기가 한두 대가 아니다 … 빗소리는 튀김소리와 비슷하다. 후두둑 지상으로 자폭하는 소리와 자기 몸을 고스란히 던져 바삭해지는 소리가 비슷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4장 내 안의 작은 숲을 찾아서
고슴도치야, 너도 알겠지만 언제까지 가시 속에 숨을 수는 없어 … 유랑하고 싶은데 세상은 저잣거리로 들어가 흥정하라 한다. 방관자이고 싶으나 당사자가 되라고 한다 … 깊으면 따뜻하다. 그리고 고요하다. 바다나 사람이나, 뭐든지.
저자
고슴도치
출판사리뷰
날 것의 일상, 감추고 싶은 얼굴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의 일기장을 본다면 그곳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떤 가식도 없는 속내와 나와 다를 바 없는 한심하고 때론 서글픈 모습이 거기 있을 것이다.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이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홀가분하기도 할 것이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단정한 일상이 사실은 회오리가 한바탕 휩쓸고 간 폐허와 다르지 않고 단단히 보이는 마음은 쩍쩍 갈라진 황폐한 사막의 다른 풍경일 뿐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어느 누군가의 진짜 얼굴이 있는 곳, 유일하게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나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일기에서조차 가면을 벗지 못하는 슬픈 나를 볼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산다.
텅 빈 껍질을 안고 거짓말을 위로 삼아 못된 얼굴 가면으로 가리고 산다.
집에 와서는 가면과 거울 속 나를 헷갈려 하면서, 눈감으면 꿈을 꾸고
다음날이면 아무렇지 않은 눈인사를 하며 산다.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며 따뜻해서 울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간다.
-어느 날의 고슴도치 일기
일기 속에서 일상은 비로소 면면을 드러낸다. 스쳐지나갔던 건물, 출근길 풍경, 계절의 변화, 책상 위 일상용품, 거래처 사람들, 꽃, 웃음소리, 친구와의 만남, 순간에 머물렀던 생각과 사소한 느낌들… 일기라는 집합장에서 이 모든 것이 의미를 찾고 형체를 입는다. 흔적이 기록이 되고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진다. 일기는 시간을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묻히고 사라지고 분해될 무엇이 재생된다.
당산역에서 합정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보는 한강 풍경은
언제나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사냐고. 스핑크스처럼.
-어느 날의 고슴도치 일기
그리고 일기를 통해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소중한 그 무엇에 대한 단서를 쥐기도 한다. 까마득한 유년 시절에 숨겨놓았던 보물들의 지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결코 어떤 첨단기술이나 장치도 불러올 수 없는 아련함과 순수의 시절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시간의 퇴적층을 뚫고 나온 어떤 기억이 북극성이 되어 발걸음을 안내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하나의 여행이며 탐험이다.
원래 이 도시의 밤하늘은 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한때 이곳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때를 보았고 마음속에 지도를 묻어두었다.
나만 아는 광경을 찾아 언젠가는 지도를 펼쳐보며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떠날 것이다.
-어느 날의 고슴도치 일기
잘 숨고 뾰족한 어느 고슴도치의 기록
이 일기장의 주인은 자신을 ‘고슴도치’라고만 소개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긴 하지만 사실은 변두리로 물러나 조용히 머무르기를 좋아하고, 자신이 그어 놓은 선을 누군가 밟을라치면 가시를 바짝 세우고 경계태세를 갖추는 모양이 꼭 고슴도치 같다고 했다. 세상살이에 영 자신은 없지만 꿋꿋이 하루를 살기를 원하고, 꽁꽁 숨기도 잘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맘껏 자신을 열어 보이고 싶다고 했다. 하루는 웃고 다른 날은 울면서 설레였다가도 한없이 우울하고 해질녁의 고즈넉함과 한밤의 쓸쓸함을 좋아하되 또 한편으로는 한낮의 소요 속으로 눈감고 뛰어들고 싶다고도 했다. 이 책은 그러한 고슴도치가 오랫동안 쓴 일기를 엮은 것이다.
‘사이’란 말에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우리 사이에 뭘 그거 같고…’ 인간 사이에는 사이가 있으니까 그런 거다.
아무리 가깝다 한들 완벽히 포개어질 수는 없다.
서로가 아무리 가까워도 낭떠러지 두 개일 뿐이다.
-어느 날의 고슴도치 일기
마음속에 고슴도치 한 마리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를 내버려두라’고 소리 없이 외치지만 매일 도시라는 낯설고 험한 숲으로 들어와야 하는 우리가 아닌가. 상처받고 상처주면서 잊히길 한편으로는 기억되길 바라면서 모두 살고 있지 않은가. 메인이벤트는 싫다고 하면서 오프닝 이벤트에 오르기는 또 자존심 상하지 않은가. 고슴도치는 이러한 모순과 뒤섞임, 서성임으로 하루를 사는 우리 모습이다. 일상과 삶 또한 무규칙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거기엔 알 수 없는 기쁨과 설레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 모습일 것이다.
모든 기쁨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면
모든 물거품이 한순간에 기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연금술은 그런 거니까.
-어느 날의 고슴도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