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6년간 500번의 인터뷰로 재현한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 지옥의 5일
퓰리처상 수상 기자가 파헤친 진실과 정의를 향한 여정
재난은 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막을 수 없는가?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울진 산불… 재해가 끊이지 않아 매년 수천명이 목숨까지 잃는다. 사건이 발생하고 초동 대응을 잘못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아무도 컨트롤타워를 자처하지 않는다. 컨트롤타워로 나선 사람들조차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위기 상황은 더욱 심화되며 국민들 사이에서는 잘못된 정보와 유언비어가 난무해 사회 전체가 공황 상태에 이른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재해 시나리오가 낯설지 않다. 대량 재해는 ‘만들어진’ 재앙일 가능성이 큰데, 발생 장소나 시기는 달라도 그 과정은 기가 막힐 정도로 흡사하다. 2005년 8월,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또한 우리나라의 세월호, 메르스 사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례없이 강력한 허리케인이긴 했지만, 상륙한 이후에는 세기가 약해져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홍수 방지 시스템 마련이 지지부진했던 상황에서 결국 제방이 터지며 엄청난 홍수를 일으켜 2차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고립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뉴올리언스에서만 1천 명 이상이 곧바로 사망한(그중 상당수는 의료 시설에 있던 사람들이고, 또 가난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또한 그 숫자를 차마 알 수도 없는 여타의 수많은 사람도 재난 이후 스트레스와 보건의료의 붕괴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나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워낙 많은 이유가 있었다. 시장의 대피 명령이 뒤늦게 내려진 까닭도 있었다. 승용차 없는 사람들을 시외로 대피시키는 데 필요한 버스와 운전기사가 부족했던 까닭도 있었다. 대피 수단을 보유한 사람들이 굳이 그대로 남아 있겠다고 고집한 까닭도 있었다. 여러 조직의 구조 노력이 제대로 조정되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정부의 여러 기관 및 층위에서 혼란과 관할 다툼이 있었던 까닭도 있었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공조가 불가능했던 까닭도 있었다. 폭풍 직전에 대피하지 않은 병원과 요양원에서 비상 전력이나 보조 급수 시스템에 미리 투자하지 않은 관계로, 오래 지속된 비상 상황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 까닭도 있었다. _본문 461쪽
결국 카트리나는 1천 명 이상의 사망자와 미국 자연재해 중 최대 규모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의사 겸 기자인 셰리 핑크는 특히 허리케인 당시 뉴올리언스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를 주목했다. 유독 다른 병원보다 많은 희생자를 냈던 이 병원은 국가 재난 관리 실패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그녀는 메모리얼 병원에서 닷새간 일어났던 일을 재구성한 기사인 「메모리얼의 치명적인 선택The Deadly Choices at Memorial」으로 201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여기에 6년에 걸친 500여 회의 인터뷰 내용을 더해 이 책을 집필했다.
목차
지도 | 독자에게
제 1 부 치명적인 선택
프롤로그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제 2 부 응보
8장 | 9장
에필로그 | 감사의 말
주요 등장인물 | 주
저자
셰리 핑크
출판사리뷰
메모리얼의 치명적인 선택
폭풍으로 고립된 병원에서 환자들이 방치되었던 까닭
2005년 8월 27일, 멕시코만 부근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관측되었다. 그다음 날 즉, 메모리얼 병원의 닷새 중 첫째 날 오전 10시, 뉴올리언스 시장 레이 네이긴이 시민 대피 명령서에 서명한다. 그런데 이 긴박한 가운데 시장에게 대피 명령의 법적 권한이 주어지는지 논의하느라 몇 시간이 흘러버렸다. 결국 미처 도시를 탈출하지 못한 2만 5천 명의 시민들은 슈퍼돔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기관들과 공무원들이 저마다 대피를 위한 우선순위 목록을 서로 다르게 내세우다 보니, 같은 건물의 구조 순서에도 경우에 따라 1순위, 2순위, 또는 가장 끝으로 가기도 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원 등의 기관에서는 주 정부의 관료주의적인 태도로 공황 상태에 이르렀다. 주 정부의 관리자들은 답답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둘째 날인 8월 29일, 뉴올리언스는 카트리나의 본격적인 영향권에 들기 시작했다. 오전 5시, 시에서 제공하던 전력이 끊겼고 메모리얼 병원 자체 비상용 발전기가 가동되었다. 다행히 카트리나는 상륙한 이후 세기가 약해져 병원 지하에서부터 들어차던 물이 점차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새로운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터져 메모리얼 병원은 다시 침수되었고, 그날 오후에는 인터넷 연결도 끊어지고 병원 일부의 전력 공급이 차단되었다. 넷째 날에는 발전기 한 대가 고장 났다. 외부 전력 공급이 차단되었을 경우 자체 발전기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자동 변환 개폐기가 침수되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해가 뜨기 전에 다른 발전기도 멈췄다. 동이 트자 병원은 숨 막힐 정도로 무더웠고, 벽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화장실 하수도는 막혀버렸고 물도 나오지 않았다.
총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허리케인 대비 계획안도 아무 소용없었다. 계획안에서는 허리케인으로 인한 홍수를 예견하지 못했다. 변전기가 지하에 있는데도 침수 시 완전한 전력 공급 두절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거리가 침수되었을 때 대피하는 방법은커녕 병원 안의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헬리콥터 사용 방법과 제공 업체와의 계약 사항도 없었다. 그 해 5월, 병원의 인증 평가를 담당하는 ‘보건의료기구평가합동위원회(JCAHO)’ 는 비상계획과 관련된 결함은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결국 병원 주위로 5미터의 물이 차오를 것이라는 경고 앞에 병원의 비상위원회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지휘본부에서는 전력이 완전히 차단되기 전에 병원의 환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탈출시키기로 했다. 메모리얼 병원은 미국의 대표적인 헬스케어 기업 테닛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우선 메모리얼의 비상지휘본부는 본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테닛 본사에는 비상상황에 대비한 사고 대응 지휘 체계 자체가 없었고, 그날 메모리얼 병원이 보낸 메일을 받았던 담당자는 재난 관리 경험이 전무했다. “자체적인 대비 계획을 일단 실시하라”는 본사 측의 무책임한 응답에, 메모리얼의 상황관리실장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구호 메시지를 담아 테닛 계열사 병원 동료들에게 메일을 전송했다. 곧 본사의 담당자로부터 그녀가 무작위로 보낸 메일 때문에 본사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구호 요청은 본사 담당자에게만 보내라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테닛 계열의 일부 병원 중역들이 대피를 지원하겠다는 의향을 표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테닛 본사 중역들은 여전히 정부 자원에만 의존해 이 위기 상황에 대응하려고 고집했다.
구조 헬리콥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도 전혀 손발이 맞지 않았다. 조종사들은 한밤중이라도 환자들을 구하려고 병원으로 헬리콥터를 몰고 갔지만, 착륙장에 나와 있던 의사는 당장 구조가 필요한 위중한 환자는 없다며 밤 비행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했다. 메모리얼의 비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수전 멀더릭은 항공 구조를 끝내겠다고 결정했지만, 병원 내부의 모두에게 이 사실이 전달되지 못해, 헬리콥터의 승무원들은 여전히 메모리얼 병원으로부터 환자 이송 요청 연락을 받고 있었다. 헬리콥터 구조가 중단된 상황에서 이번에는 에어보트가 병원 쪽에 접근해 왔다. 전국 각지에서 뉴올리언스 시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응급의료기술(EMT) 자격증 소지자들이 자원해 온 덕분이었다. 병원은 어느새 구조 우선순위에서 다른 병원보다 2순위로 밀려났고, 결국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는 이는 주 정부가 아닌, 주 정부와 아무런 계약도 맺지 않았던 민간 구조대에게 달리게 되었다.
재해는 수습되지 못하고 유언비어만 난무했다. 인질극 상황, 탈옥 사태, 경찰을 향한 총격 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느 호텔 근처에서 상어 한 마리가 목격되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방송국에서는 도시에 돌아다니는 이들을 ‘좀비’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굶주림, 분노, 흥분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이런 소식을 접한 병원에 고립된 사람들은 이 모든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겁에 질려버렸다.
연락이 올 때까지 가만히 대기하도록
재난 구조의 우선순위를 특정 의사의 손에 맡긴 비상식적 선택들
병원 전체가 침수되어 비상용 전력마저 끊길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누구를 먼저 구출할 것인가’였다.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중환자들을 최우선으로 둬야 했지만, 메모리얼의 의사들은 심폐소생술 거부(DNR)을 요청한 환자는 대피 우선순위에서 맨 나중에 두기로 했다. DNR 요청서가 있는 환자의 경우는 질환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상태임이 공인된 셈이므로 다른 환자보다 뒤늦게 탈출시키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DNR 요청을 승인했던 한 중환자의 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어머니를 DNR 요청 환자로 만들었을 때는, 그게 ‘구조하지 말라’는 뜻인 걸 몰랐다고요.” 환자의 가족들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모두 대피시킬 것이라는 말만 믿고 이미 그곳을 탈출했는데, 병원에서는 자의적으로 환자 대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었다.
비교적 건강이 좋아서 스스로 앉거나 걸을 수 있는 사람은 ‘1등급’, 부축을 해야 하는 사람은 ‘2등급’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사들이 매우 위중하다고 판단하는 환자들, 즉 DNR 요청서가 붙은 환자들을 ‘3등급’으로 매겼다. 어떤 의사는 3등급을 받은 한 여성 마비 환자를 딱하게 여겨 1등급으로 바꿔주면서 “그날 내가 한 자비로운 행동은 그것 하나뿐”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 환자 곁에 환자의 남편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는 병원 측의 선별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질환의 정도에 따라 대피 순서를 결정할 경우, 어떤 환자가 끝까지 살아남을지에 대한 예측이 틀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상황이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환자라 하더라도 반드시 치료하거나 대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해 당시 메모리얼 병원에 있던 의료진은 부상자 선별 시스템에 관해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고, 기준으로 삼을 지침도 없었다. 어쨌든 환자들은 의사들이 매긴 우선순위에 따라 차례로 병원을 탈출했다.
허리케인이 들춰낸 미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
이 책의 2부 〈응보〉에서는 저자가 그 당시 메모리얼 병원에 있었던 의료진과 관계자들 그리고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진 등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카트리나가 물러간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홍수로 인한 물은 이미 다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정부 관리들은 도시 곳곳의 시신을 수습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메모리얼의 병원에서는 예배당과 영안실, 복도와 라이프케어층 등지에서 시신 45구가 발견되었다. 이는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은 병원 및 요양원 중 가장 많은 숫자였다. 검찰청 측 수사관은 당시 메모리얼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의사 애너 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은 환자들은 모두 ‘심폐소생술 거부’ 요청 상태였던 환자들이라며 남은 의료진은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애썼다고 답했다.
하지만 수사 개시와 함께 수상한 징후들이 드러났다. 테닛 사의 전담 변호사는 수사진의 전화 질문에 방어적으로 대응했으며, 아예 질문을 서면으로 작성해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환자들이 사망한 원인은 병원의 통제 능력을 넘어선 자연재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침 메모리얼 병원에 세를 주고 들어와 있던 중환자 전문 병원인 라이프케어의 환자 9명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사망했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수사진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과연 메모리얼 병원이 고립되었던 다섯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병원에서 맞는 닷새째, 내부 시설도 완전히 오염되었고 병원 주변 치안도 불안정해 환자들을 서둘러 탈출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메모리얼의 수전 멀더릭과 다른 동료 사이에 처음 DNR 환자들의 안락사 이야기가 나왔다. 추후 심문 당시에는 그녀 스스로는 부정했지만 증언자에 따르면 그녀는 병원의 “DNR 환자들을 안락사시키는 것이 과연 ‘인도적’인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원에 있는 모두가 탈출할 수 있다고 믿는 의료진은 많지 않았다. 어떤 의사는 만약 본인이 DNR 환자와 같은 상태였다면 차라리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말했을 거라고도 했다.
환자들에게 투약하자는 멀더릭의 생각을 적극 지지한 사람이 바로 애너 포였다. 2층은 존 틸이라는 의사가 그리고 라이프케어가 있던 7층의 환자들은 포가 담당하기로 했다. 그녀는 벤조디아제핀 진정제의 혼합물을 만드는 방법을 동료 의사 쿡에게 익혔다. 환자들을 잠재워서 죽게 만들 수 있는 약물이었다. 이것이 환자들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의사가 생각하기에는 그곳에 남은 환자들에게는 이미 죽음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누워서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위해서는 차라리 이 방향이 나았다. 이러한 조치를 두고 갈등하는 간호사들에게 다른 동료는 모두의 탈출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했다.
환자들 모두 의식을 잃었고 이윽고 의사들은 간호사들에게 예배당에 환자의 시신을 옮겨두라고 지시했다. 애너 포와 그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간호사 2명을 기소하기 위한 주 경찰청 소속 수사관들의 노력은 주 경찰청과 지방검찰 사이의 갈등, 테닛 사와 관련된 정치 세력, 애너 포를 옹호하는 미국의사협회 등 때문에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또한 애너 포와 그녀의 변호사가 일조해 작성한 법안이 만장일치로 의회를 통과한다. 그 법안은 루이지애나주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재난 의학의 규약에 따라서” 행한 업무의 경우, 대부분의 민사 소송을 면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결정을 모든 의사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의사는 애너 포의 사례가 매우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며, 재난 당시 의사의 결정이 법과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자는 메모리얼 병원의 선례를 통해, 재난 상황에서 부상자 선별이라는 상황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음을, 위기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사회에서는 재난 직후의 삶과 죽음은 결국 한 개인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부디 앞으로 닥칠 재난 상황에서는 메모리얼에서의 위기 상황이 그저 낭비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