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詩로 그린 마음의 풍경화
우리 시대 대표 서정시인 도종환의 시화선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가 새로운 만듦새로 출간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출간 이후 8년간 시집으로서는 드물게 7만 부가 팔려나간 독보적인 스테디셀러로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 책은 도종환 시인이 30년 동안 펴낸 아홉 권의 시집 중에서 아끼고 좋아하는 시 61편을 골라 ‘물의 화가’라 불리는 송필용 화백의 그림 50점과 함께 엮은 시화선집이다. 그간 시와 그림을 통해 ‘고요와 명상’을 형상화한 두 작가의 ‘마음의 풍경화’가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해주었다. 특히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라는 구절은 드라마를 비롯해 유명인들의 애송시로 자주 인용되어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번 개정판은 도종환 시인의 초판 부록 시와 송필용 화백의 초판 수록 작품 외 추가된 신작을 재편해 여백이 깊어진 디자인으로 시심(詩心)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목차
개정판 시인의 말
초판 시인의 말
1부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 드는 날 | 가을 저녁 | 바람이 오면 | 꽃잎 | 담쟁이 | 늦가을 | 여백 | 처음 가는 길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홍매화 | 저무는 꽃잎 | 깊은 가을 | 시래기
2부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초겨울 | 산벚나무 | 산경 | 폐허 이후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빈 방 | 그리운 강 | 오늘 밤 비 내리고 | 자작나무 | 낙화 | 개울 |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3부 꽃이 피고 저 홀로 지는 일
쓸쓸한 세상 | 섬 | 꽃다지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초저녁 | 혼자 사랑 | 눈 내리는 벌판에서 | 산 너머에서 | 오월 편지 | 나리소 | 꽃씨를 거두며 | 쑥국새
4부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이 세상에는 | 그대 잘 가라 | 꽃잎 인연 | 어떤 마을 | 목련나무 | 봄의 줄탁 | 연필 깎기 | 어린이 놀이터 | 빈 교실 | 세우 | 눈물 | 돌아가는 꽃
5부 함께 먼 길 가자던 그리운 사람
흔들리며 피는 꽃 | 먼 길 | 저녁 무렵 | 깊은 물 | 나무 | 산맥과 파도 | 상선암에서 | 벗 하나 있었으면 | 풀잎이 그대에게 | 쇠비름 | 우기 | 강
저자
도종환 (지은이), 송필용 (그림)
출판사리뷰
절망으로 가장 뜨거운 순간을 지나, 희망의 詩
이 책은 1부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2부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3부 ‘꽃이 피고 저 홀로 지는 일’, 4부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5부 ‘함께 먼 길 가자던 그리운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61편의 시에는 언뜻 적막함이 강물처럼 흐른다. 비 내리고 꽃은 지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온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그 세월 속에서 시인은 ‘마음 기댈 곳 없고’(「오늘 밤 비 내리고」),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살아있는 동안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해(「꽃잎 인연」) 소리 없이 아팠지만 그 시간이 지나 결국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고(「자작나무」), 흔들리며, 비에 젖으며 아름다운 꽃들로 피어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
도종환 시인이 소재로 삼은 ‘꽃’, ‘담쟁이’, ‘시래기’, ‘자작나무’, ‘강’은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젖으면서도 따뜻한 빛깔을 피워내는 꽃, 함께 손잡고 벽을 오르는 담쟁이, 험한 바위를 만날수록 아름다운 파도……. 그들의 모습을 통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고 늘 깨어 흐른다면 우리의 절망도 그리 무겁지 않으리라는 시인의 담담한 이야기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가슴을 조용히 울린다.
이처럼 도종환 시인은 자연 속에서 삶, 사랑, 희망, 행복을 읽어내 쉬우면서도 간결한 시어로 풀어낸다. 맑고 잔잔한 마음이 전해져오는 그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온다. 무겁거나 어려운 암호가 아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풍경과 자연에서 포착한 생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시가 앵두꽃, 자두꽃, 산벚꽃, 제비꽃 같기를 바랍니다. 크고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하고 은은한 꽃이기를 바랍니다. 목마른 이에게 건네는 맑은 물 한 잔이기를 바랍니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격려의 악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는 한 장의 엽서이기를 바랍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다가가는 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친 이 옆에 놓여있는 빈 의자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 개정판 시인의 말 中
‘생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생의 비의’를 담은 그의 시는 어떤 이에게는 ‘위로’의 언어를, 어떤 이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건넨다. 시인의 말 그대로 시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성장통의 시간, 폐허를 견디는 시간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것이 바로 사람이고, 인생이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폐허 이후」 전문
시화선집 곳곳에 자리한 송필용 화백의 적요한 강, 바다, 하늘 위를 거니는 것은 ‘사랑’의 시어들이다. 지난한 시간을 통과한 절망과 슬픔은 사랑이라는 꽃잎을 피워낸다. 고난의 길 끝에 찾아온 그 사랑을 일러 도종환 시인은 ‘인간에게 늘 찾아오는 가장 절실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라 한다. 아픔은 머물다 가게 마련이고 그 아픈 소망이 아니라면 사랑도, 삶도, 시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백이 필요한 모든 이들, 간절한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소리 없이 잦아드는 세우(細雨) 같은 시의 숲을 거닐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