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너, 친구 없지? 내가… 친구 해 줄까?”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 달콤하게 속삭이는 그림자의 정체는?
수이는 친구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까칠한 열두 살이다. 변두리 초등학교로 전학 온 첫날, 수이는 학교 전시실에서 괴이한 목소리를 듣고 기절한다. 그때부터 수이는 자신의 그림자가 따로 살아나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학교에서는 그림자가 사라진 채 멍하니 다니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제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아이들 사이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는데……. 수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제로라 불리게 된 아이들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을 갖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아웃사이더인 현우, 하은과 제로 조사단을 만든다. 그림자는 서서히 수이를 지배하려 들고, 수이는 이를 막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치는데……. 『수이와 그림자』는 우리의 이면과도 같은 그림자를 통해 아이들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어두운 상처들에 주목한다.
“성적이 떨어졌어.”
“내가 느리다고 애들이 놀려.”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했어.”
“친구가 더는 나랑 놀기 싫대.”
그림자의 달콤한 위로에 쉽게 마음을 내어 주듯,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대체되고 확장되며 아이들을 잠식해 간다. 수이는 자신과 똑 닮은 그림자의 악몽 같은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림자를 빼앗기고 제로로 불리던 아이들은 자기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을까?
저자
진저 리 (지은이), 몰리 박 (그림)
출판사리뷰
‘설령 내가 제로가 된다 해도… 현우하고 하은이는 날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 우린 친구니까!’
3인조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우정과 용기의 파노라마
수이와 그림자는 국내 작가 진저 리(Ginger Ly)가 세계관을 짓고 만든 그래픽 노블이다. 이 작품은 2017년에 미국 ABRAMS 출판사에서 『SUEE AND THE SHADOW』라는 제목으로 먼저 소개되어, 정교하고 깔끔한 그래픽과 스타일리시한 디자인, 수이를 비롯한 3인조 등장인물들 사이의 유기적이고도 풍부한 플롯으로 이미 주목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 수이가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서사는 독자들로부터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작품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빠의 회사 발령으로 하루아침에 두 건물 사이에 낀 ‘사이 집’으로 이사하고 전학까지 하게 된 수이는 친구를 사귀는 데도 까다로운 통과의례를 적용하기 일쑤고, 면담 중에도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초등학생의 고달픈 삶에 대해 곱씹을 정도로 냉소적이다. 하지만 ‘나도 엄마가 없다’는 그림자의 목소리에 솔깃하고, 딸을 위해 진수성찬을 준비하는 최고의 요리사 아빠는 꿈에서나 존재한다는 현실에 절망하기도 하는 평범한 소녀이기도 하다.
뭐든 혼자 하는 게 익숙했던 수이는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일에 휘말리면서 같은 반 현우, 하은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같이, 함께, 친구……. 이 말들이 주는 위로와 든든함 속에서 수이는 자기 안의 오만과 외로움을 인정하고 친구들을 그림자의 위협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과감하게 위험을 무릅쓰는데…….
‘설령 내가 제로가 된다고 해도… 현우하고 하은이는 절대로 날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 우린 친구니까!’
스스로 정한 기준을 내세워 ‘자발적 혼자’를 선언해 왔지만 현우의 현명한 배려와 하은의 순수한 진심은 수이의 케케묵은 ‘소신’을 바꿔 놓았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3인조 제로 조사단의 내밀한 변화와 활약상, 수이 내면의 갈등이 가시화된 듯한 그림자와 수이 간의 ‘친구’ 논쟁, 그림자의 지배력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수이의 모습은 중독성 있는 양념처럼 『수이와 그림자』에 독보적인 매력을 더한다.
‘제로’를 구할 자, 누구인가?
아이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드러내어 보듬는 이야기
수이가 전학 온 학교에는 ‘제로’라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초점 잃은 눈빛, 흐느적대는 걸음걸이, 사라진 그림자! 제로들은 이외에도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한 적 있는 아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이와 그림자』에서 아이들은 ‘제로’가 아니더라도 외롭다. 그림자를 처음 만난 날, 수이는 아빠에게 이 놀라운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회사 일에 지친 아빠는 “그래그래.”로 일관하고, 학교는 ‘제로 반’이라는 이름으로 ‘제로’가 된 아이들을 모아 놓지만, 결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처사는 아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반 친구를 ‘반 평균을 깎아 먹는 애들’이라며 ‘제로’로 몰아세우기 바쁘다. 『수이와 그림자』는 함께할수록 커지는 용기와 우정에 대해 상기하게 한다. ‘제로 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수이와 친구들의 모험담을 통해, 결국 외롭고 소외된 아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의 자각과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지막이 일깨운다.
감각적인 색감, 이야기의 완급과 스케일을 조절하는 디자인이 이뤄 낸 탄탄한 서사의 세계
『수이와 그림자』는 흑백의 묘사와 밝은 빨강 포인트 컬러, 종종 등장하는 노랑, 파랑 등의 제한된 색감을 활용해, 인물의 감정 변화나 서사의 긴장감 등을 깊이 있게 표현해 냈다. 까만 원피스, 빨강 가방은 뻗친 머리, 심드렁한 표정과 더불어 긴 설명 없이도 수이의 캐릭터를 한껏 드러낸다. 수이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검은 그림자는 등장부터 존재감을 과시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눈 주위를 둘러싼 검은 선은 ‘제로’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했으며, 차분한 노랑 색감은 나은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제로’가 되어 버린 하은을 향해 걱정하는 수이의 모습에는 노랑 베다를 활용하고, 수이의 그림자가 우세할 때는 검정과 회색 베다를 사용하는 등, 상황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도 색감의 대비가 효과적으로 쓰여 읽고 보는 재미를 더했다.
잘게 나뉜 칸의 유기적인 운영 또한 『수이와 그림자』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수이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여 주면서 마치 수이와 함께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가, 수이의 행동을 낱낱이 나누어서 보여 줌으로써 그 행동에 담긴 수이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읽게 한다. 교실 전체 상황을 조망하다가도, 어느 한 부분을 과감하게 클로즈업해서 중요한 표정이나 행동에 주목하게 하고, 같은 크기의 칸을 수이와 그림자로 연달아 배치함으로써 둘 사이의 논쟁 상황에 긴박감을 부여하거나, 수이가 그림자의 지배에서 서서히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같은 크기의 칸이되 수이의 얼굴 변화에 주목해 반복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에 완급을 조절하며 세련된 구성을 연출했다.
탄탄한 서사를 힘 있게 서포트하는 색감의 세계, 세련미 넘치는 디자인의 향연 속에서 『수이와 그림자』를 십분 즐겨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