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투자에 실패한 뒤 집안이 기운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는 아빠, 과시욕으로 똘똘 뭉쳐 아들의 교육에 집착하는 엄마 사이에서 영재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금기를 깨고 들어간 벽장에서 영재는 밤 열한 시만 되면 들리던 사각사각, 끼이익 끼이익, 쩔꺽 소리의 진실과 마주하는데...... . 과연 영재는 집 구석구석을 점령한 쥐들로부터 가족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생쥐가 되어 버린 진짜 엄마와 웃는 얼굴의 가짜 엄마 중 영재는 누구와의 미래를 꿈꿀 것인가? 가족을 가족이게 만드는 것들, 공생의 의미를 되짚는 이야기.
목차
1. 오래된 이층집
2. 엑스
3. 밤의 소리
4. 백 항아리
5. 벽장
6. 쥐 떼
7. 의식
8. 가족
9. 흰쥐들
10. 탈출
11. 그날, 이후
저자
김정신 (지은이), 홍세인 (그림)
출판사리뷰
“아! 저 집이요?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서로의 상처를 보지 못하는 가족에게 다가온 행운의 실체는?
영재네 가족이 이사 간 집은 지어진 지 사십 년을 훌쩍 넘긴 이층집이었다. 큰 대로변 고층 빌딩 맞은편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집. 영재 아빠는 투자에 실패하는 바람에 빚을 갚느라 살던 집을 팔고, 거나하게 취한 술에 의지해 이층집을 계약했다. 영재 엄마는 사십 년 된 낡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도 이탈리아 직수입 의자만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는 곧 엄마에게 숨과 같은 것이었으니, 네 살 영재가 구구단을 외우고 다섯 살에 미국인과 대화를 하며 영재 기를 내뿜던 시절에 엄마에게 영재는 그 어떤 고급 가구보다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학교 주관 미술 대회를 망치고 시험지에 오(ㅇ)보다 엑스(X)가 많아질 무렵, 급기야 엄마는 영재를 엑스로 지칭했다.
“난 이제 영재가 아니라 엑스야…….”
영재는 손가락 끄트머리에 피가 맺힐 때까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긴장과 부담의 무게를 견뎌 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상처로 점철된 이들 셋에게 이층집은 어떤 시간을 허락할까? 계약 파기 시 계약금의 열 배 보상, 잠겨 있는 벽장 출입 금지, 계단에 있는 백항아리에 매일 쌀을 넣을 것. 다소 황당하고 영문 모를 서약들이 품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결국 그 아이가 사람들을 구했네. 특별한 아이가 맞았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공존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는 이야기
영재는 머리와 몸통의 반이 잘려 흉측하게 죽은 시궁쥐를 흙에 묻고 안녕을 빌어 줄 줄 아는 아이였다.
“언젠가 다시 태어나서 이 잔디에서 마음껏 놀아.”
무턱대고 쥐약부터 찾는 영재 엄마와는 달랐다. 영재 엄마에게 쥐는 사람 사는 곳에 범접할 수 없는 불결한 미물이었지만, 영재에겐 자연의 일부였다. 이사 계약서에 적힌 서약, 백항아리에 쌀을 매일 넣는 문제에 대해서도 셋은 입장이 달랐다. 술에 절어 들어온 아빠는 정작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도 백항아리에 쌀을 넣지 않는 엄마를 탓하기 바빴고, 엄마는 임자 없는 항아리에 매일 쌀을 채워 넣을 이유가 없다며 보란 듯이 항아리를 깨 버렸다. 엑스는 남아 있는 항아리 하나를 찾아 가슴에 안고 이 모든 다툼으로부터 분리된 공간, 금지된 벽장 안 어둠 속에 몸을 맡기기에 이른다. 남은 항아리에라도 쌀을 채워 넣겠다는 마음을 품은 채. 영재가 가슴에 품어 지킨 것이 비단 백항아리뿐이었을까? 벽장 안에서 영재는 금세 온 집 안을 덮어 버린 쥐 떼, 쥐신과 맞닥뜨리고, 이층집이 지닌 놀라운 비밀과 마주하는데……. 사람의 손톱을 먹고 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쥐들은 완전한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육체를 빼앗겨 영혼만 흰쥐에 옮아간 인간은 스스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걸까? 이층집은 수많은 물음을 높은 담 안에 가둔 채 쥐의 섬이 되어 가고 있었다.
“넌 진짜 가족을 잘 만난 것 같구나!”
생쥐가 되어 버린 진짜 엄마 대 웃는 얼굴의 가짜 엄마, 우리의 선택은?
영재는 엄마와 아빠가 차례로 쥐에게 육체를 빼앗기고 흰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지만, 쥐신의 주문에 걸려 엄마, 아빠의 육체를 입고 온 쥐 가족들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난 투자 같은 건 절대 안 해. 내가 원하는 건 우리 가족이 안정되고 편안하게 사는 거야.”
“나는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야. 네가 하기 싫은 건 절대 하지 마.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만 생각해.”
영재는 실수를 해도 웃고, 별것 아닌 일에 연방 웃어 주는 새 엄마, 아빠가 좋았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 바빴던 엄마, 아빠가 이제는 영재를 향해 ‘가족의 행복’을 외치고 있었다. 쥐 집사는 지금의 부모가 진짜 인간이 된다면 ‘완전한 가족’이 될 거라는 말로 행복을 약속했다. 한 번 손톱을 먹었으니, 두 번만 더, 약 이십 일 뒤면 완전한 사람이 되고, 사람의 영혼이 들어 있는 흰쥐는 영원히 소멸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무덤덤하던 영재는 열두 시 정오를 알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엄마, 아빠를 구하러 달려가는데……. 범접하기 어려운 쥐신의 마수,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쥐 떼들 사이에서 영재는 진짜 엄마, 아빠와 재회할 수 있을까? 이들은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개성 있고 감각적인 색감 설계로 한층 톡톡해진 이야기의 세계
『사각사각』의 이미지는 홍세인 작가가 리소그래프 작업을 스캔 받아 완성한 것이다. 상상 속의 색감을 그대로 종이 위에 재현한다는 장점이 말해 주듯, 『사각사각』 속 색감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영재네 이층집을 표현한 그린 계열의 색감은 다소 낡은 집의 인상을 드러내면서도 신비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결말 부분에서, 이와는 반대로 붉은 색감을 메인으로 사용하고 그린 계열을 추가한 것은 새로운 세입자를 기다리는 상황을 보여 줌과 동시에,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성격의 세입자를 위시한 역발상의 이야기가 엮여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할 만큼 재미있는 발상이다. 이층집에서의 첫날 밤, 영재의 방, 출입이 금지된 벽장과 예기치 못한 소음으로 공포에 휩싸인 영재를 이원화된 색감으로 처리해, 긴장감을 높인 것도 색감 설계의 묘미다. 쥐신과 쥐 떼의 등장에 황금색을 사용한 것은 징그러움을 넘어서는 미스터리함을 발산하고,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흰쥐의 케이지를 형광 블루로 표현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운명을 암시한 설계로 읽힌다. 이렇게 흔히 보지 못했던 흥미로운 색감들의 향연으로, 『사각사각』의 스토리는 한층 다각적인 상상의 옷을 입고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이제 이야기가 그 안을 마음껏 활보하게 내어 주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