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후 11년 만에 재발견된 문학 천재의 마지막 작품!
정교하고 찬란한 루시아 월드의 기원을 만난다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 루시아 벌린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이 자전 에세이를 쓰고 있었다. 1936년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1965년 멕시코 남부의 어느 마을에서 끝나는 이 원고에서,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장소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다. 세 번의 결혼, 알코올중독, 싱글맘으로서 겪어낸 수많은 직 업들, 롤러코스터 같지만 로맨틱했던 삶의 편린들을 프리즘처럼 펼쳐놓는다. 가족과 친구에게 보낸 애틋한 편지와 사진이 담겨 있는 이 책은 루시아 월드의 종착지이자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보기 드문 에세이다.
목차
서문_제프 벌린 8
웰컴 홈 13
편지들(1944~1965) 119
작가 소개 257
저자
루시아 벌린 (지은이), 공진호 (옮긴이)
출판사리뷰
루시아 월드의 종착지,
그녀의 가장 사적인 기록
2004년에 세상을 떠난 후, 11년이 지나서야 문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단편소설가 루시아 벌린. 세상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암으로 투병하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글을 썼다. 그녀가 집이라 부르던 곳들을 회고하고 그곳에 대한 추억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자전적 에세이 『웰컴 홈』의 마지막 문장을 끝맺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루시아 벌린의 가장 진솔한 기록이자 그녀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할 동반자다. 그녀가 삶의 한때를 보냈던 여러 집들에 대한 기록과 사진, 그리고 가장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모음집을 읽다 보면, 부엌 식탁에서 버번 한 잔을 벗 삼아 밤늦도록 타자기로 글을 쓰던 루시아 벌린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열여덟 곳의 집,
천재적 작가로서의 힘과 매력을 탄생시킨 공간들
『웰컴 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유년 시절부터 이후 네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울 때까지 거쳐온 집들에 관한 그녀의 회상이다.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 서부의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아이다호, 켄터키, 몬태나, 애리조나, 뉴멕시코, 뉴욕 등 미국 내 여러 주는 물론 칠레, 멕시코까지 수많은 곳을 거치며 삶을 꾸렸다. 루시아 벌린의 세계는 넓었다. 광산 바로 위쪽에 있어 여러 기계 작업 소음과 함께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집, 밤에 불을 켜면 바퀴벌레들이 사각사각 흩어져 도망가던 외갓집, 화려한 프랑스풍 고가구들과 하녀들이 함께했던 칠레의 이층집, 기저귀 차는 아이를 둘이나 키워야 했지만 난방과 수도, 전기시설조차 없었던 집, 온갖 꽃향기로 가득한 정원이 있고 강가 옆에 자리한 너른 집…. 벌린이 거쳤던 집들의 면면만 봐도 그녀의 삶이 얼마나 큰 진폭 사이를 오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쓰인 글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눈부시다. 각 집들을 회상하는 글들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럼에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집에 초대되어 함께 둘러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표현들로 그 집의 특징을 묘사하는 특유의 문체 덕분이다. 벽과 바닥의 재질이나 가구의 디자인과 광택, 집 안팎에서 들려오는 소리,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들과 주변 풍경 등을 벌린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 보여주고, 그렇게 전달되는 생동감과 질감은 그녀가 타고난 작가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아니, 어쩌면 그 집들이 지녔던 저마다 다른 특징이 그녀의 감각을 날카롭게 키워낸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벌린의 여러 공간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물은 따로 있다. 먼지와 소음이 가득한 미 서부 탄광촌에서의 어린 시절, 칠레에서의 화려하고 평화로웠던 청소년기,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 메마름에 힘들었던 두 번의 결혼생활, 드디어 평온하고 다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 꿈꿨던 세 번째 결혼생활, 그리고 그 꿈을 앗아간 마약상들……. 삶의 국면마다 벌린이 머물렀던 곳들을 살피다 보면 그녀가 겪은 여러 환경과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합하면 루시아 벌린이라는 작가가 어떻게 삶에 대한 애착, 고통을 마주하며 뚫고 나가는 근성, 그러면서도 솜털처럼 보드랍고 세심한 감수성을 한데 품게 되었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녀의 기록을 찬찬히 살피며 그녀의 삶을 퍼즐 맞추듯 한 조각씩 이어봐야 하는 이유다.
작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벌린,
그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편지들
『웰컴 홈』의 후반부는 루시아 벌린이 1944년부터 1965년까지 쓴 편지들의 모음이다. 대부분 가까운 친구이자 멘토, 시인인 에드워드 돈 앞으로 보낸 이 편지들에서 벌린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는 여러 감정들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집이라는 공간을 다룬 이 책의 전반부에서 그녀가 거쳤던 외적 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후반부에선 그녀의 다층적인 내적 면면들을 살펴보는 인상이 든다.
곤궁한 가계 때문에 가내수공업으로 옷을 제작해 판매하는 이야기, 결혼과 사랑이 자신에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토로,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에 대한 목마름,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상처, 마약 중독과 싸우는 남편에게 다가오는 마약상들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털어놓는 여러 고백들. 이 모두는 벌린을 작가로 만들어준 토양인 동시에 한 인간에게 평생 달라붙어 있었던 고통들이었다.
동시에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작가로서의 열망, 그러나 막상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뒤부터 밀려드는 두려움, 작품 개고 과정에서 겪는 고통,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관, 멋진 작품을 접했을 때의 설렘도 편지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미 알려져 있듯 벌린은 세 번의 이혼, 알코올 중독, 생활고 등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다. 그럼에도 삶에 지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은 것은 이렇듯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벼려갔던 그녀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는 벌린의 유머 감각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어두운 환경에서 강인한 생활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럼에도 결코 우울하고 암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 사이사이에 들어간 유머와 위트 덕분인데, 편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청소부 매뉴얼』, 『내 인생은 열린 책』 등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과 이야기는 곧 그녀 자신과 생활의 일부분이었음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웰컴 홈』은 루시아 벌린이라는 작가를 입체적으로 알려주는 내비게이션과도 같은 책이다. 『청소부 매뉴얼』, 『내 인생은 열린 책』을 통해 그녀를 사랑하게 된 독자들이라면 그녀의 작품 속 감동과 생명력의 근원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