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대충 살아지지 않는 보통의 도시 사람들을 위해
에디터 박찬용이 기록한 도시의 삶
[매거진 B]에 있는 11년 차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 박찬용이 도시와 도시인의 삶에 대해 쓴 에세이. 『요즘 브랜드』와 『잡지의 사생활』에 이어 그가 세 번째로 낸 산문집이다. [에스콰이어]를 비롯해 [얼루어] [W 코리아] [오디너리] [힙합퍼] 등의 온·오프라인 매체, 저자의 블로그와 SNS에 5년간 흩뿌려놓았던 글들을 모았다. 저자는 유명하지 않은 동네 식당에서 도시인들을 관찰하고, 성수동과 을지로 등 서울의 힙플레이스를 체험, ‘힙타운’의 흐름을 탐구하며, 종이와 서점의 미래 등을 고민한다. 다양한 소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소박하고 잘 만들어진 것들에 대한 애정과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다. 이 책은 도시의 화려함 이면에 있는 소박함을, 별수 없다는 체념 이면에 오늘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내겠다는 묵묵한 집념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들 이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보통 사람들을 담았다. 저자는 화려하고 세련된 잡지의 지면에는 싣지 못했던 도시 곳곳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도시를 움직이고 있는 우리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목차
서문_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1부_해야 할 일을 합니다
내일 일은 더 잘하고 싶었다/글쓰기를 좋아하세요?/벼룩시장의 제프리/더 나빠지기 전에 헬로라이프/왜 나는 잡지계로 돌아왔는가/그렇게 박창진이 된다/바버샵의 빛과장님/코코와 한국야쿠르트/양복 아저씨들/니키 라우다와 문명의 무균실화/계획에 실패한 사람들에게/숫자와 가치/중요한 건 잉어
2부_산란한 마음이 유행병처럼 들어도
거대 거리고 나/우리 안의 고려반점/삼각지의 옛집국수/90년대의 시흥사거리와 스니커즈 비즈니스/JY Lee 연대기/오래된 집에 산다/구여권으로 가는 마지막 여행/라라랜드의 메르세데스 애니멀스/예비역 지드래곤의 경제효과/이너 피스 럭셔리/연애와 알고리즘
3부_도시 생활은 점입가경이지만
입장들/시청역의 데이비드 호크니/모두가 한 골목에서 맥주를 마셨다/성수동의 카페와 벽돌과 시간과 흔적들/동묘시장과 ‘개쩌는 빈티지 숍’/힙타운 공식/종이의 가치/명예와 모객의 서점업/해방촌의 독립서점/힙한 가게의 속사정
4부_어쩔 수 없이 여기 사람이니까
도시의 낮과 밤/서울의 습관/야생 고양이와 도자기 그릇/빨래와 세제/국립극장 가는 길/이코노미 클래스에서의 글쓰기/엄마의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독립출판, 보도블록, 김치전/함부르크의 랜덤 케이팝 댄스/모데나와 식초계의 페라리/스트레스와 도시
후기를 대신하여_ 원고 주변의 이야기
감사의 말
저자
박찬용
출판사리뷰
“애증의 도시가 애잔하게 보일 것이다”
이율배반적인 마음을 달래줄 일상의 기록
저자 박찬용은 38년째 대도시에서 살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로는 11년째 일하고 있다. 일상이 화려할 법도 하지만 이 책에서 드러난 그의 일상은 소박하기만 하다. 갑자기 문을 닫은 낡은 가게 앞의 공고문, 맨해튼의 벼룩시장에서 만난 전직 잡지 에디터 제프리 이야기, 부산시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 서울시 용산구의 옛집국수, 사료만 먹고 도망치는 배은망덕한 집 앞의 야생 고양이들 같은 것들이 그의 일상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건 도시의 흔한 풍경들이자 스마트폰 화면 속 세계에 빠져 사는 도시인들이 너무 쉽게 지나쳐버린 것들이다. 그는 이런 풍경들을 수집병자처럼 온갖 방식으로 기록해왔다. 스마트폰과 중고나라에서 산 노트북으로, 대중교통과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서, 블로그와 SNS에 수시로 올렸다. 무심하게 지나쳤을 풍경을 적당한 거리에서 관찰하는 박찬용의 글 속에서 이 도시는 어딘가 애잔하게 보인다. 그건 얄팍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조급한 마음에 잊어버리고 있었던 소박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임대료를 따라잡지 못하는 월급, 일터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 익숙해진 도시 생활을 끝내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 보통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는 도시는 때로 적대적이고, 대체로 애증의 대상이다. 박찬용의 글은 그런 도시를 닮은 도시인의 이율배반적인 마음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 이 도시가 그리 삭막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뾰족한 대책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이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이 책이 도시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소박하지만은 않은 위로다.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세속에 대처하는 유연한 방식을 말하다
저자가 이 산문집 전반에서 제안하는 도시인으로서의 삶의 태도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합니다.” 1부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먼저 ‘해야 할 일’이기에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안 할 수 없다는 수긍의 태도다. 도시에서 살기로 한 이상 우리는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일을 계속해야 한다. 열정을 외치다가 번아웃되어서도 안 되고, 다 내려놓으라는 유혹에도 굴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할 일을 합니다”라는 문장에서 읽히는 다른 하나의 태도는 ‘합니다’에 드러난다. ‘합시다’가 아닌 이유는 도시야말로 여러 사람의 입장과 가치가 혼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겠다는 태도가 이 책의 전반에 깔려 있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1부에 담겼다면, ‘2부_산란한 마음이 유행병처럼 들어도’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기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과 계속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 오래도록 변함없을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어서 ‘3부_도시 생활은 점입가경이지만’에서는 그런 와중에 더욱더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힙타운을 취재하고, 구도심을 중심으로 톰과 제리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흐름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4부_어쩔 수 없이 여기 사람이니까’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고양이 밥그릇으로 쓰고 있는 도자기 그릇과 불편하지만 즐거운 국립극장 가는 길, 익숙해져 버린 서울 사람만의 습관 같은 것들이다.
책의 부제가 ‘박찬용 세속 에세이’인 것도 이 구성 때문이다. ‘세속’이라는 단어에는 ‘세상의 일반적인 풍속’이라는 사전상의 뜻이 있다. 이 책에 다양한 소재의 글 45개를 묶었지만 그중 하나도 세상의 일반적인 풍속과 동떨어진 것이 없다. 내용상 1부는 세속을 살아가는 태도, 2부는 세속에 잠식당하지 않는 용기, 3부는 세속의 현상과 원리, 4부는 세속을 누리는 방법이다. 열정이나 체념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세속을 대처하는, 현실적이고도 유연한 생활 방식이 이 책에 있다.
“힙은 무슨, 쿨은 무슨, 취향은 무슨”
일상에서 발견한 소박한 품위를 전하다
자기표현의 시대에 취향에 관한 글들도 넘쳐난다. 박찬용은 이 대열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취향 품평이 아니라 취향의 기초를 이루는 품질에 관해, 품질의 기초가 되는 직업인의 윤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살아내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직업인들이 있다. 그건 바로 보통의 우리들이다. 우리 일의 결과물은 누군가의 삶에 가닿는다. 잘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걸 알아보는 사람을 감화시킨다. 잡지 에디터로서, 도시의 관찰자로서, 에세이스트로서 박찬용은 그런 대상을 알아보고 감탄하는 능력을 이 책에서 힘껏 발휘한다. 이 책의 추천사 역시 그 지점을 말하고 있다.
“도시의 지루한 정면 대신, 단면, 구멍, 틈새까지 두루 아우르는 뷰는 그동안 다져진 탄탄한 필력과 정보력 덕일 것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추천사 중에서)
저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성수동 건물들의 오래된 벽돌들에서, 하계동의 전시회를 다녀오던 길에 마주친 매끈한 보도블록에서 전문가의 윤리를 발견한다. 도시 곳곳에 생겨나는 힙한 가게들과 해방촌의 독립서점들에서도 ‘교과서처럼’ 정직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거기에 저자가 말하는 ‘소박한 품위’가 있다. 도시를 잘 살아낸다는 건 품위 있는 무언가를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일인지도 모른다. 간지러워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지만 내심 품고 있던 우리 마음의 빗장은 여기에서 풀린다.
저자는 감사의 말에서 “아직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품위와 존엄을 지키며 살고 있다”라며 “그런 분들 덕분에 나도 힘을 낼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건 일과 일상을 위해 노력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찬사다. 무엇보다 이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서로를 더 존중해도 되고, 더 친절해도 되며, 더 감사해도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