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내가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
이건 과학이랍니다.”
“드디어 [미스 마플]의 실사판을 만났다!” _ [월스트리트저널]
‘법의학의 여왕’ 퍼트리샤 윌트셔 첫 회고록
조용한 시골길을 훑고 지나간 타이어의 진흙에서부터 신발 밑창에 박힌 꽃가루까지, 자연이 남긴 아주 작은 실마리를 포착해 정의를 구해온 법의생태학자 퍼트리샤 윌트셔. 이 책은 주부이자 교수로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 우연히 범죄 수사의 세계로 뛰어들어 마침내 ‘법의학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 한 여성의 다이내믹한 인생 여정을 다룬다.
울창한 숲에서부터 음습한 도랑과 어두침침한 낡은 아파트 거실, 그리고 유년 시절 처음으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깨우친 웨일스의 좁다란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생생한 기억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고는 농장 울타리나 자동차 페달, 구두의 바닥과 카펫, 사체의 머리카락에서 찾아낸 생명과 죽음, 그리고 자연과의 지울 수 없는 연결 고리에 관한 매혹적이고 독특하며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독자들은 현미경으로 포착해낸 작은 알갱이 하나가 어떻게 수많은 억측과 가설을 부수고 보이지 않던 흔적을 거짓말처럼 끄집어내는지, 그 신비롭고 매혹적인 서사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너무나 가깝지만 눈에 닿지 않았던 미세한 세계가 우리와 얼마나 깊이 얽혀 들어갈 수 있는지 그 경이로움과 함께, 같은 불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미래를 위해 한 여성이 발휘한 집요함과 끈기의 증거가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다.
목차
01. 몰래 스며든 흔적
02. 실종된 희생자
03. 어느 날 갑자기
04. 할머니의 정원
05. 장미와 라임나무의 증언
06.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
07. 머리카락 속에 잠든 진실
08. 죽음 속의 아름다움
09. 아주 작은 실마리
10. 마지막 숨결
11. 텅 빈 그릇
12. 치명적인 탐닉
13. 중립
14. 나와 당신의 존재
저자
퍼트리샤 윌트셔 (지은이), 김아림 (옮긴이)
출판사리뷰
법의학의 여왕이 전하는
현미경 속 미세하지만 강력한 진실
세상에는 자연스럽지 않은(unnatural) 죽음이 많다. 하지만 자연(nature)은 희생자를 위해 진실을 남겨주곤 한다. 세균과 균류가 가까이 오지 않는 한 꽃가루와 포자는 수백만 년까지도 견디며, 그렇기에 이들은 과거의 환경을 재구성하고 변화를 추적하는 데 매우 가치 있는 수단이다.
25년간 누구보다 먼저 강력 사건 현장에 들어가 시체를 마주해온, 법의학의 여왕 퍼트리샤 윌트셔는 자연이 남긴 단서를 해독하고 이를 엮어 진실을 밝혀 왔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웨일스의 어느 광산촌에서 태어났다. 세상은 비참함으로 가득했지만, 그와는 멀리 동떨어진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물론 인생은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부터 ‘그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유년 시절 기관지염과 폐렴을 앓아 병약했던 까닭에 학교에도 잘 나가지 못했으며, 병원에서 의학 실험실 연구원으로 일하던 당시의 남자 친구는 대소변과 혈액을 분석하고 쥐를 다루는 일보다 더 여자다운 일을 하라고 핀잔을 줬다. 비서직 일자리를 얻기 위한 시험을 치르고 코카콜라 본사와 건축 회사를 거쳐 20대 후반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식물학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받은 그녀는 졸업 후 미생물과 일반생태학을 강의하다 런던대학교 고고학연구소에 부임, 환경고고학자로서 영국 전역을 누비며 과거의 환경을 재구성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온했던 그녀의 일상은 경찰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뒤바뀌게 된다. 도랑에서 시체가 하나 발견되었으며, 범인의 차량에 묻은 옥수수 꽃가루를 조사해달라는 요청은 흡사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텔레비전에서나 듣던 말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인생을 미리 계획한 적이 없었던 만큼 이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50대의 나이 법의학의 초기 단계를 개척한 선구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나는 지금 ‘왜’라는 질문만 던지고 있다. 그보다는 ‘안 될 게 뭐 있어?’라고 자문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전에도 해본 일이잖아. 실험실과 병원에서 일해봤고, 건축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비서가 되었고, 다시 미생물학자로, 고고학자로 변신했잖아. 이번에는 법의학자로 변신해보는 거야. 그것도 과학 아니야?” ___본문 중에서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세계,
자연의 한 조각이 알려주는 것들
법의학(forensic)이라는 단어가 고대 로마시대 재판이 열리던 광장(forum), 또한 법원이나 대중을 뜻하는 라틴어 ‘forensis’에서 유래했듯, 재판을 염두에 두고 수행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전혀 법의학적인 작업이 아니다. 그러한 이유로 퍼트리샤의 일은 언제나 중립을 유지하며 매우 주의 깊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게다가 절대적인 것이란 없는 자연에서 표본의 해석은 무척 많은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러한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삶과 자유가 완전히 뒤바뀌는 결론에 도달할 위험이 크다.
연인을 살해한 남자의 운동화와 차량 운전석 매트의 자작나무 꽃가루로 시체가 묻힌 장소를 찾고,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는 강간 사건에서 장미 가시에 긁힌 자국과 재킷에 묻은 라임나무 꽃가루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밝혀내며, 희생자의 콧속에서 추출한 알갱이로 가해자에게 종신형을 선고받게 하는 등 그녀는 꽃가루로 당신이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느냐는 주변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로, 대담하게 도전을 이어나갔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카메라에 찍히는 것 이상으로 세세하게 추적이 가능하다. 포유류와 조류, 어류와 양서류는 물론 25만 종 이상의 식물, 500만 종이 넘는 균류, 3000만 종이 넘을 곤충과 지구를 공유하는 탓에, 작은 움직임에도 자연의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는 일의 핵심은 이러한 흔적을 통해 사건 현장의 이미지를 명징하게 그려내고, 사람과 장소를 연결 짓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의 배움은 끝없이 이어진다며 70대의 나이에도 은퇴를 거부하며, 300여 건에 달하는 강력 범죄 사건에서 활약을 펼친 그녀는 초기 법의생태학의 기틀을 닦고 과학 수사라는 것이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 마침내 ‘법의학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경찰들은 종종 나를 ‘웨일스의 마녀’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은 직감이나 선견지명이 아니라 분석에서 나온다. 또한 그들은 나를 ‘미스 마플’이나 ‘메리 포핀스’라고도 부르는데, 그건 내가 매우 냉철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 큰 어른들이 울면서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니까." _ 퍼트리샤 윌트셔, [가디언]지 인터뷰 중에서
삶과 죽음이 무한히 이어지는 자연에서
사람의 미래를 보다
스스로 냉철한 사람이라 평가하는 저자는 어린 딸의 죽음 이후 어떤 재난이나 불행도 더 이상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노라 고백한다. 그녀는 그동안 목 졸림, 독살, 칼에 찔림, 질식, 사지 절단에 따른 사망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사람이 죽고 부패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또한 어딘가의 누군가가 이기적인 거짓말과 사악한 행동으로 타인의 삶을 어떻게 망치는지 숱하게 목격해왔다.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을 계속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서, 충격에 둔감해지거나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감정을 잠시 보류하는 일은 쉬웠다. 그녀에게 죽음은 자연의 여러 과정 가운데 하나, 육체는 그저 빈 그릇이며 눈앞에 놓인 시체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일 뿐이었다.
“나는 경찰의 편이 아닙니다. 중립이죠.
진실을 찾고자 여기 온 것뿐이에요." _ 본문 중에서
사람이 객관적이지 않으면 쓸모 있는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던, 그런 그녀가 변화하는 과정은 사뭇 흥미롭다. 법칙에는 항상 예외가 따르며, 완벽함은 사람과 자연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또한 열다섯 살에 불과한 어린 소녀의 시신, 차가운 금속 테이블 위에 놓인 지저분하고 앙상한 성매매 여성의 몸을, 흥미로운 도전 과제에서 한때 같은 감정을 느꼈던 사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비합리적인 감정이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사실은 바로 우리가 숨을 쉬고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역설하면서.
소설보다 어쩌면 더 놀라운, 지금까지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았던 미세하지만 거대한 세계를 담아낸 『꽃은 알고 있다』. 이 책은 자연과 죽음이 얽힌 매혹적인 가장자리로 독자를 안내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일정 거리를 두고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준다. 다시는 같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는 미래를 위해, 자연의 가장 작은 조각을 이어 진실에 다가가고자 집요함을 발휘한 어느 여성에게서, 우리는 매우 특별한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