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제6권, 『산소리』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몽한 세계에서 마주한 노년의 회한과 금기의 욕망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과 만나다!
일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문학을 엄선해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깊이 이해하자는 취지로 20년 만에 새 단장을 시작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의 여섯 번째 작품이 출간된다. 『설국』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자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노마문예상 수상작 『산소리』다. 서정 소설의 원류를 이룬 거장이자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인간으로서, 그가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이 새롭게 출간된다.
소설은 초로에 접어든 신고가 죽음을 예견하는 ‘산소리’를 듣게 된 후 벌어지는 불행과 혼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루하루 소멸을 향해 치닫는 노년의 불안과 죽음의 공포를 담백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비트는 한편, 동경했던 여인에게 품은 금기의 욕망을 꿈이라는 공간을 빌려 과감하게 풀어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참전 후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슈이치, 술과 마약에 절은 아이하라,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기누코까지, 불행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 인간 군상을 통해 패전이 일본에 가져온 충격과 황폐함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사를 던진다. 특히 탐미 문학의 상징이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소름 끼칠 정도로 기묘하고 아름답다”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한적한 산골 마을의 정경과 미묘한 계절의 변화를 섬세한 묘사와 농익은 문장으로 포착해낸 것은 이 작품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출간된 지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후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산소리』는, 성(性)과 죽음, 꿈이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의 서정성을 선보이며 독자들을 다시금 전율시킬 것이다.
목차
정사
산소리
-산소리
-매미날개
-구름 불꽃
-밤톨
-섬 꿈
-겨울 벚꽃
-아침의 물
-밤의 소리
-봄의 종소리
-새집
-수도의 정원
-상처 후
-빗속
-모기떼
-뱀 알
-가을 물고기
작품 해설 - 성(性), 죽음, 꿈의 하모니
연보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은이), 신인섭 (옮긴이)
출판사리뷰
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계를 전율시킨 가와바타 야스나리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과 만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일본의 정수를 표현해낸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와 섬세함이 있다”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극찬을 받았고,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독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소설가’로 손꼽힌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 묘사와 유려한 문체로 세계를 전율시켰던 그가 50세가 되던 해에 써내려간 대작이 있으니, 바로 『산소리』다. 「이즈의 무희」가 그의 청년기를 『설국』이 중년기를 대표한다면, 단연 『산소리』는 삶의 연륜과 예술적 완결성을 두루 갖춘 만년의 걸작이다. 가와바타 문학의 저변을 이루는 짙은 허무와 고독,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고유한 미의식은 한층 더 깊어진 동시에,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성(性)과 욕망에 대한 절묘하고도 과감한 접근이 돋보인다. 대대적인 손질을 거쳐 15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산소리』는, 순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서정의 절정을 구현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건넬 것이다.
“나는 누구의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타락한 퇴역군인, 가족을 잃은 전쟁미망인, 성불구가 된 가장……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시대의 얼굴
한적한 가마쿠라 산골에 사는 초로의 노인 신고. 예순둘이 된 그는 온몸이 낡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흰머리가 성성하다 못해 눈앞에서 세어버리고, 이유 없이 객혈을 하고, 40년 동안 손에 익은 넥타이를 두고 매는 법을 잊어버려 망연자실한다. 불안해하던 그에게 ‘산소리’는 죽음의 예고처럼 다가오고 평온했던 일상은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아들 슈이치, 술과 마약에 절어 자살 소동까지 벌인 사위 아이하라, 결혼에 실패해 내쫓기듯 친정으로 돌아온 딸 후사코, 부모의 불화 아래 고집불통으로 자란 손녀 사토코까지. 자식들의 불행을 방관했다는 압박과 회한에 사로잡힌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은 며느리 기쿠코뿐이다. 세월을 거스른 절절한 연정 그리고 사그라지지 않는 금기의 욕망이 꿈과 현실을 오가며 아슬아슬하게 피어오른다.
『산소리』는 1949년에 쓰이기 시작하여 5년간 세심한 손질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패전 직후 미군정이 실시되던 시기에 탄생한 만큼, 소설 곳곳에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충격과 또 다른 억압에 짓눌리는 공허함이 시대의 잔상처럼 남아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신고는 전쟁을 거치며 성불구자가 되고, 아들인 슈이치는 전쟁터에서 몸에 밴 폭력과 타락 때문에 기누코라는 여자와 불륜에 빠진다. 기누코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전쟁미망인이다. 그런가 하면 딸 후사코는 남편이 마약중독자로 폐인이 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온다. 퇴폐와 무력감에 취해 비틀거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은 곧, 폭력과 상실감로 점철된 근대 일본의 단면 그 자체였다. 전쟁이 초래한 죽음의 냄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으로 기묘하고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산소리』는 제7회 노마문예상을 수상하며 전후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자리매김했다.
꿈과 현실의 기로에 선 한 노인의 고뇌와 갈등
죽음과 욕망, 금기를 파헤치는 위험한 유희
일본에서 ‘산소리’는 죽기 전에만 들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처럼,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다란 중추를 이루고 있다. 희미한 기억과 노쇠한 몸을 이끌고 친구들의 장례식을 가는 게 일상이 되고, “머리를 몸통에서 떼어내 세탁물처럼 병원에 맡기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온몸으로 인생의 무게를 버텨낸다.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론 묵직하게 그려지는 노년의 고뇌는 유한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면서 마음 한구석을 슬프게 하는 차가움으로 텍스트의 저변에 드리워진다.
그러나 『산소리』에서 그려진 노년은 쓸쓸한 허무의 세계로만 수렴되지 않는다. 작품 곳곳에는 끝내 가지지 못한 여인을 향한 집요한 갈망, 그리고 가져서는 안 되는 여인을 향한 위험한 정열이 자리하고 있다. 주인공 신고는 꿈속에서 무인도에서 낯선 여인과 뒹구는가 하면, 낙태한 열네댓 살 소녀가 성녀(聖女)가 되는 소설을 읽고, 아들과 혼담이 오갔던 여인의 유방을 만지기도 한다. 몽환 세계에서 굴절되어 드러난 며느리 기쿠코에 대한 애틋한 욕망은 단순히 주책맞은 노인의 색욕이나 일탈로 매도할 수 없다. 엄격한 도덕의식에서 해방되어 즐기는 매혹적인 성(性)의 유희이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규범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본연의 고뇌인 셈이다. 『산소리』는 죽음과 욕망이라는 두 가지 오래된 금기에 과감하게 균열을 내며, 현실에서 쉽게 맛보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