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작은철학자」 시리즈의 9권은 괴물에 관한 것입니다. 옛이야기나 영화, 게임 등에서 괴물은 청소년에게 무척 친숙하고 흥미로운 존재이지만 철학에서는 괴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신화와 전설 속 괴물들, 기형적인 모습으로 태어나 괴물 취급을 받았던 실존인물들, 괴물을 신성한 존재로 바라본 고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게 합니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판되어 프랑스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은철학자’ 시리즈는, 어린이 · 청소년용이라는 이유로 재미로 치장하여 정작 철학은 주인공 자리에게 밀려나게 하는 책하고는 다릅니다. 어른 철학책을 흉내 내어 플라톤부터 철학자들 이름을 순서대로 주워섬기지도 않습니다. 단편적인 우화를 늘어놓고 ‘한번 생각해 보렴’하고 끝맺지도 않지요.
‘작은철학자’는 한 가지 철학적 주제를 깊이 파고듭니다. 풍부한 그림과 친절한 설명으로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지만 때로는 끈기 있게 자기 머리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점에서 ‘작은철학자’는 어린이들이 진정한 철학적 사고 훈련을 하게 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차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괴상한가? 8
괴물, 무섭지만 매혹적인 것 14
괴물스러움의 유혹 19
괴물스러움이 신의 표시? 23
인간과 괴물은 언제 분리되었을까? 27
과학은 영웅일까, 미친 마법사일까? 34
우리 속에 있는 괴물, 타자 속에 있는 괴물 41
정치권력이라는 괴물 48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태어난다 59
괴물 찾아보기 67
저자
피에르 페주 (지은이), 문동호 (그림), 이현정 (옮긴이)
출판사리뷰
인간이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닐까?
괴물은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상상 속 짐승을 일컬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괴물 영화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괴물이 아닐까?
인간은 자신과 똑같은 인간 수십만을 한꺼번에 살육한 적도 있어요. 인간들의 그런 행동이야말로 괴물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인간이 아니라 야만적인 짐승처럼 다른 인간들을 죽였으니 말이죠. (12쪽)
홀로코스트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자는 괴상하고 혐오스러운 사람일 것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들이나 나치즘에 열광한 사람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것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 속에 있는 괴물’이 “군중 속에서 괴물스러운 면을 드러내게”(55쪽) 되기가 쉽다는 설명으로 청소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일[홀로코스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적은 없었어요. 성실히 자기 일을 했을 뿐이지요. 자기가 비인간적인 일을 한다는 생각 없이 잔인한 대량 학살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역사상 처음으로 현대 기술이 그런 대규모 범죄에 이용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53-54쪽)
우리와 다른 자들은 모두 괴물?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낯선 타인을 괴물 보듯 하지 않는 것이다. 옛날 반공 포스터에 뿔난 도깨비를 그려 넣었듯이, 상대에게 괴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버리는 것은 죄책감 없이 상대를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정상/비정상, 문명/야만, 우리/그들의 이분법으로 재단하고 다른 집단을 비정상적이고 야만적인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한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부모와 여동생은 자신이 보기에 이해 안 되는 사람, 자기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괴물처럼 취급했어요. 특이한 행동을 하는 자를 해로운 동물 보듯 하고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외국인의 행동이나 다른 나라의 관습을 그렇게 보는 것은 인종차별이에요. (45-46쪽)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은 모두 괴물 같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사람들은 대체로 괴물에 대한 공포에 몸을 맡겨 버림으로써 자기 정체성에 대해 안심하고, 또 자기는 정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정상에 속한다는 것이 주는 이익을 누리기도 해요. (47쪽)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판 정신과 성찰
한나 아렌트가 밝힌 바와 같이,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평범하고 성실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속에 있는 괴물이 흉포해지지 않도록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책은 그러한 설명을 통해 철학을 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괴물스러운 것은 뭐든 멀리하거나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 철학이에요.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벨 때 칼을 썼지만, 철학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이성이에요. …(중략)… 격한 감정이나 망상에 빠져 있으면 전쟁이나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데, 이성은 감정이나 망상에 빠지지 않게 하지요. (59쪽)
생각하기를 멈췄을 때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으므로 이성이 늘 깨어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한편, 이성 중심주의에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성 자체가 괴물을 낳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목적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없는 ‘도구적 이성’은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짓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도 쉬운 말로 차근차근 설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생소한 철학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악의 평범성’이나 ‘타자화’, ‘도구적 이성’ 등 어려워 보이는 개념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괴물이라는 특이한 주제 속에서 현대 철학의 중요한 논점들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 여러 가지 괴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긴 ‘찾아보기’ 부록과 화가 문동호의 귀여운 듯 기괴한 괴물 그림은 괴물에게 느끼는 매혹이 철학적 훈련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