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땅콩 할멈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집 안을 구석구석 살피고, 모자를 모두 써 보고, 양말도 모두 신어 본다. 찬장 가득한 잼도 하나씩 먹어 본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고 허전한 느낌이다. 그건 어쩌면 이상하고 허전한 게 아니라 혼자 사는 땅콩 할멈이 심심하고 외롭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선가 딩글댕글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정말 이상하게도 말을 하는 달걀! 말을 잘 하는 달걀은 땅콩 할멈의 말동무가 되어 함께 살기로 하고 할멈은 다른 달갈과 구분이 되게 달걀에게 양말도 씌워 준다. 그런데 땅콩 할멈은 아직도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다. 그러던 할멈은 결국 그게 뭔지 알아채고는 아무것도 없이 밋밋하던 달걀의 얼굴에 눈, 코, 입을 그려 주고 활짝 웃는 얼굴의 달걀을 바라보며 만족한다.

저연령 유아들을 위한 흥미로운 캐릭터의 이야기 그림책 시리즈
3-5세의 아이들은 언어 능력과 상상력이 급격하게 발달하므로 단순한 사물인지의 차원에서 벗어나 이제 이야기의 줄거리를 조금씩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이야기 그 자체보다는 그림책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더욱 관심을 가지며 집중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저연령 유아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은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사건은 물론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개성 있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이 등장하는 이 세 권의 그림책은 이런 저연령 유아들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형태의 그림책이다. 그 동안 저연령 유아를 대상으로 한 국내 창작 그림책은 발간된 것이 많지도 않았고, 내용도 언어인지, 사물인지 등 인지 그림책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저연령 유아 대상의 순수한 의미의 창작 그림책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특히 한 캐릭터가 일정하게 등장하는 그림책 시리즈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이 등장하는 이 그림책 세 편은 저연령 유아들이 즐길 수 있도록 단순하고 명쾌하면서도 재미있는 사건으로 구성한 창작 이야기 그림책이며, 거기다 아이들이 특히 재미를 느낄 만한 캐릭터를 매 편 일정하게 등장시킨 그림책 시리즈라는 점에서 새롭고 신선하다.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꼭 닮은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
이 그림책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깊이 공감하고 재미있어할 만한 캐릭터이다.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은 그 개성적인 캐릭터로 아직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운 유아들이 흥미를 느끼고 이야기에 몰두할 수 있게 도와 주며, 아이들의 행동과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해 친숙함과 공감을 느끼게 한다. 먼저 땅콩 할멈을 보자. 보통의 그림책에서 할머니는 주로 인자하고 지혜로운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이 땅콩 할멈은 다르다. 이름만 할멈일 뿐 나이만큼 지혜롭다든지 어른스럽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과 닮은 부분이 훨씬 더 많다. 초록색 연필로 편지를 써야 한다며 온 집 안을 뒤지는 모양, 올빼미와 함께 김밥에서 단무지를 빼 먹는 모습 등은 뭔가에 고집스럽게 몰두하고 때론 아무 생각 없이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를 보는 것 같다. 땅콩 할멈에게 어른처럼 심각하고 진지한 구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게 땅콩 할멈은 이름이나 생김새를 떠나 아이들이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말하는 달걀은 말 그대로 말을 하는 신기한 달걀이다. 그것도 재치 있게 말을 잘 하는 달걀이다. 오히려 땅콩 할멈보다 침착하고 어른스러울 때가 많아서, 초록색 연필이 없어졌다고 울상인 땅콩 할멈을 도와 주고, 소풍가서 먹을 김밥을 망가뜨리는 올빼미와 땅콩 할멈을 보며 걱정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올빼미 때문에 소풍을 못 가게 되자 투정을 부리고 투덜대는 모습은 아이들과 똑같다.
이렇게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은 여타의 그림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개성이 뚜렷하고 특이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 생각이나 행동 등은 아이들의 일상적인 모습과 닮아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아이들은 친밀감을 느끼며 쉽게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다. 특이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주고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운율이 살아 있는 리듬감 넘치는 이야기
3-5세 때 유아들은 언어 능력이 급격하게 발달하는데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간결하고 리듬감이 넘치는 문장으로 된 이야기는 아이의 언어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반복적인 문장이 주는 음악성과 리듬감은 아이의 귀를 사로잡고 책에 더욱 몰두하게 만들어 언어 능력을 발달시키고 감수성도 풍부하게 해 주는 것이다.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쾌하면서도 재미있는 사건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런 재미난 사건들을 간결한 문장으로 그려간다. 깔끔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는 반복과 운율이 살아 있어 리듬감이 넘치며 따라서 아이들이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에서 "빨간색 연필은 안 되나?" "파란색 연필은 안 되나?" 하는 달걀의 질문은 그 반복이 주는 편안하고 익숙한 분위기로 인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 속의 사건에 동화되게 해 준다. 또 의성어나 의태어의 적절한 사용은 음악적인 문장이 주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하며 책 읽는 재미에 더욱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초록색 연필이 없어 울상 짓던 땅콩 할멈이 "초록색 연필이 발이 달려 콩콩콩 달아났을 리는 없지." "초록색 연필이 날개가 달려 나풀나풀 날아갔을 리는 없지." 하고 달걀의 말을 따라하며 조금씩 기분이 풀렸던 것처럼 말이다. 오순도순, 때로는 티격태격 재미나게 살아가는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줄 뿐만 아니라 언어와 정서 발달에도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귀엽고 편안한 캐릭터, 밝은 색감의 유쾌한 그림
하얀 머리에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 안경을 쓴 땅콩 할멈. 땅콩 할멈이 그려 준 눈, 코, 입에 할멈의 양말을 모자 삼아 써 반질반질한 머리를 장식한 말하는 달걀. 이 두 캐릭터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편안하며 친근한 모습이다. 작가는 그저 매끈하고 예쁘기만 한 캐릭터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림책의 캐릭터가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할멈과 달걀은, 왠지 그림책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지만, 작가는 그 둘로 독특하고 재미있는, 귀엽기까지 한 캐릭터를 만들어 새로운 콤비를 탄생시켰다. 또한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은 그들의 나이가 어떤지,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갖가지 사건에 놀라고 궁금해하며 즐거워하기도 하는 둘의 표정을 보면 아이들의 귀여움과 천진난만함이 생생하게 묻어난다. 노란색, 주황색, 연두색 등을 주조로 한 그림은 가볍고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인 느낌으로 시선을 끈다. 하지만 그 가볍고 밝은 색감이 불안정하거나 들뜬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즐겁고 유쾌하며 또한 포근한 기분으로 책 속의 이야기에 몰두하게 만든다. 약간은 거친 듯한 터치의 그림은 아주 매끄럽진 않지만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아기자기하고 익살스럽게 잘 그려내고 있다.

저자 소개
글/ 그림 조은수
1964년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어린이책 기획 모임 보물섬에서 일을 했고, 여러 해 동안 어린이책에 글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그림까지 그리고 싶은 욕심에 영국으로 건너가 그림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어린이 인문 교양서 로 창작과비평사의 제 1회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서 비창작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림책 로 제 1회 서울동화 일러스트레이션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을 쓴 책으로는시리즈, 등이 있고, 그림을 그린 책으로는등이 있다. 그외 다수의 외국 그림책을 번역하기도 하는 등 어린이책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땅콩 할멈과 말하는 달걀이 등장하는 이 그림책 세 권은 그림책 작가 조은수가 2년이 넘는 긴 시간에 걸쳐 작업한 작품으로 기발하고 재미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조은수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와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선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며 아이들의 유희적인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