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작품이 왜 한국 현대소설 명작인가”
1990년대 이후 현대 단편소설 20편을 망라한 황종연의 신작 평론집
“비평의 저주받은 운명을 축복의 그것으로 바꾼다”(성민엽)는 극찬을 받으며 날카로운 통찰력과 지성으로 문학적 담론을 끊임없이 생산해온 문학평론가 황종연 교수의 평론집 『명작 이후의 명작』이 출간되었다. 문단에서 활동한, 30년간 엄격한 자기 성찰과 압도적인 치열함”을 가지고 “전후세대와 4·19세대 이후 한국 평단의 드문 거인”(신형철)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이번 평론집은 『비루한 것의 카니발』 『탕아를 위한 비평』 이후 10년 만의 신작이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현대문학》에 발표한 평론 열여덟 편과 미발표작 두 편을 엮은 것이다.
저자의 전작들이, 한국 현대문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저서는 한국 문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인 1990년대 작품들부터 다시 짚어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1990년대의 문학이 지금 우리의 생활 현실과 밀접하게 대응되고 있을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예술, 철학 사조의 영향 및 해외 대중문화로부터 인력을 받으면서 모더니즘의 다극화가 일어난 시기로 한국 현대문학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1990년대 이후 출간된 작품들 가운데 스무 편을 선정, 이 작품들이 ‘왜’ 한국 문학의 현재를 대표하는 명작인가를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한다.
“한국 문학이 존속하려면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평가하는 일에 보다 진지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에 대한 나름의 실천인 이번 평론집은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적, 비판적 의의를 작품 속에서 깊이 있게 관찰하는 황종연의 독창적인 사유가 올곧이 드러나 있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서문을 대신하여
문학적 동물들의 아나키즘-최윤, 「회색 눈사람」
여성의 슬픈 향유-신경숙, 「배드민턴 치는 여자」
하이퍼리얼한 타자의 환각-윤대녕, 「카메라 옵스큐라」
사랑이 상상의 베일을 벗을 때-전경린,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민중의 탈신화화와 재신화화-김소진, 「건널목에서」
이야기 전승의 놀이와 정치-성석제, 「조동관약전」
고독한 대중문화 마니아의 타나토스-김영하, 「바람이 분다」
스크린을 보는 눈의 역설-하성란, 「당신의 백미러」
세속 너머를 향한 식물-되기-한강, 「내 여자의 열매」
동물화한 인간의 유물론적 윤리-은희경, 「내가 살았던 집」
순진한 사람들의 카니발적 공동체-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반권력을 위한 인간 우화-이기호,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정치 이성 레짐의 바깥으로-김연수,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동성사회적 욕망과 팝 모더니즘-박민규,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후의 생을 위하여-김인숙, 「감옥의 뜰」
인간 사육의 숭고한 테크놀로지-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소비주의의 역병과 싸우는 농담-김애란, 「성탄특선」
강남 밖의 청년, 그의 망상과 익살-김경욱, 「런닝 맨」
미니멀리즘, 아이의 마음, 코뮌주의-황정은, 「디디의 우산」
비극적 파토스의 민주화-권여선, 「봄밤」
후기
색인
저자
황종연
출판사리뷰
최윤부터 윤대녕, 신경숙 그리고 권여선까지……
한국 문학의 정전으로 자리잡은 명작 그 이후의 명작 바로보기
“내가 거론한 작품은 1990년대 이후의 문학이라는 별자리 중 스무 개의 별에 불과하지만 유독 반짝이는 별의 무리가 그렇듯이 별자리 전체의 파노라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각 작품의 이런저런 세목에서 그 작품이 속한 시대의 문학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은 정치적, 윤리적, 미적 관심의 광채를 만나곤 했다. 진정성의 윤리, 아나키즘적 정치 감성, 여성성의 재발견, 몸의 유물론, 우정의 모럴, 환상 애호, 우화 창작 지향, 미적 대중주의 등은 그 빛에 대한 명칭으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어휘들이다.“
_후기에서
문학이 해당 시기의 시대상과 지배적 정서를 내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황종연은 이번 평론집에서 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통해 스무 편의 현대 단편소설이 각각 어떤 요인 때문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는지 20가지 키워드로 분석했다.
김인숙의 「감옥의 뜰」 배경이 중국이었던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 ‘해외여행’과 ‘외국 체류’가 활발해진 풍토를 반영했고, 주인공의 주요 활동 무대인 하얼빈은 안중근이 수감됐던 감옥이 있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소설을 분석해나간다. 또한 김영하의 「바람이 분다」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잉여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PC통신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던 사회상을 반영하며, 현재 시제 문장은 종래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내면 독백’의 등장이었음을 간파한다.
한편 김애란의 「성탄특선」에서는 원룸에 함께 사는 20대 오누이가 현대 소비주의의 상징 중 하나인 성탄절에 겪는 일들을 통해 ‘소비사회’에서의 ‘新빈곤계급’의 행복과 불행을 그려냈음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한다. 이기호의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소의 씨를 받았다는 작중인물의 서술이 기존 리얼리즘소설과 차별화되어 있으며 한국 전통사회에서 소의 중요성을 짚어보고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인간 우화’로 표현했음을 드러낸다.
정홍수 문학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명작 이후의 명작을 발견하고 호명하면서 황종연의 언어는 바로 그 명작의 운명을 함께 수행한다”. 작품이 그러했듯이, 그가 작품마다 내포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고독감, 노동, 빈곤, 빈부격차, 정치적 갈등 등)를 과감하게 끄집어내고 확장시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이 차별화된 언어는 저자가 평론가로 지낸 30년간 응축해온 문학적 담론과 촘촘하게 짜여진 그의 논리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평론집 한 권을 정독하면 저자가 품은 문학에 대한 애정은 물론 한국 문학의 위상과 방향성까지 묵직하게 다가올 것이다.
한편 ‘대표적인 한국 단편소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대부분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유년의 뜰」에서 멈”(서문에서)춰버린 경우가 많다. 황종연은 문학평론가로서 문학 전공자들은 물론 대중에게도 한국 문학을 널리 알리는 데 노력해왔으며, 이 평론집은 그 노력을 집대성한 것이다. 최윤, 신경숙, 윤대녕, 전경린, 은희경, 한강, 박민규, 이기호, 김연수, 편혜영 등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 문학의 대표 작가들의 문제작들을 분석해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문학의 가치와 의의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